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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푸르른 날」

  • 작성일 2012-09-03
  • 조회수 11,428




서정주,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시_ 서정주 -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시집 『화사집』『신라초』『동천』『국화 옆에서』『질마재 신화』『떠돌이의 시』 등, 산문집 『한국의 현대시』『시문학 원론』 등이 있음. 2000년 작고.
낭송_ 홍서준 - 배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천년제국>, <삼월의 눈> 등에 출연.
출전_ 『푸르른 날』(미래사)
음악_ 정겨울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워낙 리듬감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멜로디를 붙이지 않아도, 선율 없는 상태에서도 이미 노래인 시. 「푸르른 날」은 노래로 만들어져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송창식이 부른 노래도 절창이고 시도 절창이다.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하!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니!
  한국 시사(詩史)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명품 시구다. 과연 서정주 선생은 언어의 연금술사, 한국어를 자신의 육체에 새긴 시인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이 단순성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굉장히 단순한 형식의 이 시에서도 삶과 죽음을 항상 겹으로 의식하고 있었던 시인답게 ‘존재의 유한성’을 환기시키며, 허무감과 그에 따른, 현재 감정에 몰입하자는 쾌락주의를 선동하누나.
  이 순간만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면 어때, 봄이면 또 어때, 길이 그대가 그리우리! 그리움의 이러한 시간적 보편성을 따르자면, 이세상과 저세상으로 나뉘어 있어도 그리워할 수 있다고 4연을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둘 중 하나가 죽으면 이 그리움이 다 무슨 소용이랴, 언제 네가 죽을지 내가 죽을지 모르니까 우리 둘 다 살아 있는 이 순간 그리움을 다 펼쳐내자꾸나, 이것이 시인이 노래한 뜻일 테다.
  시의 시작과 끝에 되풀이되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동어반복이 아니다. ‘그리운’은 형용사고 ‘그리워하자’는 동사다. ‘그립다’는 형용사가 ‘그리워하다’라는 동사로 바뀔 때 그 과정에서 능동성이 생긴다. 그리운 마음이 생기면 절제하지 말고 그리워하라! 그리움을 폭발시켜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길지 않으리!
 
문학집배원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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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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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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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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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1건

  • 익명

    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귀국대원...... 이 시는 '오장 마쓰이 송가'라는 서정주의 친일시중 일부이다. 서정주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익히 많은 사람들이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친일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1942년 7월 평론[시의 이야기-주로 국민 시가에 대하여]를 '다츠시로 시즈오'이라 는 창씨명으로 [매일신보]에 발표하게 되면서부터이다.

    • 2012-09-03 10:09:5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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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는 최재서의 주선으로 '인문사'에 입사해 친일 어용 문학지인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일을 맡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친일 작품들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1942년부터 1944년 사이에 그가 집중적으로 발표한 친일 작품의 목록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 2012-09-03 10:10:5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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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이야기-국민 시가에 대하여(1942,평론)><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평론)><인보( 隣保)의 정신(1943,수필)><스무 살 된 벗에게(1943,수필)><항공일에 (1943,일본어시)><최체부의 군속 지망(19 43,소설)><헌시(獻詩1943,시)><보도행(1943,수필)><무제(1944,시)><오장 마쓰이 송가(1944,시)>.

    • 2012-09-03 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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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들은 그 당시 시대상황으로서는 대부분이 친일행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문학쪽만 보아도 친일행적 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육사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얼마나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보였는지가 문제가 된다고 해도 서정 주는 친일 행각에 늘 앞장서 왔고 적극적이었다.

    • 2012-09-03 10:13:1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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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래도 그는 다른 친일 문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친일 경력을 비교적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혀온 바가 있다. 문제는 그가 이를 인정하면서도 당시 자신에 행동에 대한 사과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궤변적으로 늘어놓아 뜻있는 사람들의 비난을 샀다는 것이다. 친일하게 된 연유에 대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는 미당의 고백은 당시 유명한 말이되었으며 어떤 대학생은 이를 비난하기 위해 미당이라는 서정주의 호를 풍자해 '말당선생 보시오'라는 답시를 쓰기도 했다.

    • 2012-09-03 10: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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