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 「섬」
- 작성일 2019-08-08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3,359
안도현 | 「섬」을 배달하며…
모난 돌이 정 맞는 건 육지에서의 일이다. 섬에선 모난 돌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어느 돌 하나 쓸모없는 돌이 없다. 모가 나면 모가 난 대로 모난 구석끼리 암수를 끼워 맞춰 돌담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슬포 어느 돌담 올레길이었나.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깨지고 부딪치다 쓸모없어진 나도 섬의 슬하에 들어 모처럼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하염없이 귀를 맡겨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와 적절한 거리를 설정해야만 생기는 발견이나 성찰 같은 뭍의 저 습관적 의식도 저만치 접어 둔 채.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오직 근원적인 질문으로서만 존재하는 섬의 바다만 한 침묵을 마주하고 있었을 때, 그때 불면으로 밝힌 '뜬눈'이 등대가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병가를 내듯 섬으로 간다. 그 섬의 돌들 속에 끼어 있으면 못난 것도 마냥 흉만은 아닐 것 같다.
시인 손택수
작가 : 안도현
출전 :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 (창비. 1997.)
추천 콘텐츠
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 관리자
- 2024-06-14
- 관리자
- 2023-12-28
- 관리자
- 2023-12-1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