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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

  • 작성일 2022-02-24
  • 조회수 1,861




 첫사랑에 대한 소고 -이현호 새로 만든 배를 처음 물에 띄우는 진수식((進水式)에는 걱정하는 마음이 많다. 진수식에 온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으면 출항하지 않는다. 반드시 두 명 이상이어야 배를 띄운다. 같은 날 두 척의 배가 진수식을 올려서도 안 된다. 둘 중 하나는 재수가 없게 된다. 처음 배에 올라서는 휘파람을 불면 안 된다. 휘파람은 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배에서는 용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물속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 풍운뇌우(風雲雷雨)의 조화를 부리는 까닭이다. 옛 배꾼들은 폭풍우를 만나면 용왕의 노여움으로 알고 산 사람을 바다에 처넣는 공양을 했었다. 요즘은 그전에 희생물을 바치는 의미로 핏빛 포도주가 담긴 병을 뱃머리에 팽개쳐 깨뜨린다. 이상의 것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바다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안전과 풍어(豊漁)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한 번 떠난 배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부모 형제라 해도 되돌아와 태우지 않는다. 한편 위의 풍어와 동음이의어인 풍어(風魚)는 폭풍과 악어라는 뜻으로, 해상에서 만나는 재해나 해적을 이른다. 폭풍의 방향을 미리 안다는 물고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참혹하거나 무섭거나 싫거나 하여 진저리가 날 정도이다.'와 '정성이나 성의 따위가 몹시 대단하고 극진하다.'라는 뜻을 함께 품은 ‘끔찍하다’라는 말처럼. 저 ‘풍어’도 두 마음을 한 몸에 안고 있다. 그 사이에서 배꾼들은 불길한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것이다. 손을 잡았을 때 힘을 빼던 당신의 손아귀나 나의 말이 당도하기도 전에 흔들리던 눈빛 같은 것을 떠올리면, 풍어를 찾아 폭풍의 방향을 짐작하려고 등대같이 불을 켠 눈동자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진수식은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과 검은색 등 울긋불긋한 여러 빛깔의 깃대로 만선을 이룬다. 돼지를 잡고 술을 받아, 무당을 데리고 연안이나 섬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진수식의 시작과 끝은 성황당에서 제의를 지내는 것이다. 예부터 성황당에 사랑을 발원하는 돌탑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있어, 맹신이 맹신을 차곡차곡 받드는 시작하는 마음은 모두 미신이다. 작가 : 이현호 출전 :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 2018)



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을 배달하며


알 수 없는 일을 앞에 두고 사람은 곧잘 눈을 감습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내어다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차라리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어느 문화권이든 바닷가 마을에는 전해지는 미신이 많습니다. 두려움이 많다고 해도 될 테고 믿음이 많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 마음처럼 생각처럼 바다의 일이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인 듯 배를 띄워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바다와 사랑은 닮았습니다. 나를 띄워보내야 하는 숱한 처음들.


시인 박준


작가 : 이현호

출전 :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 2018)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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