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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버려진 신발」 중에서

  • 작성일 2013-02-14
  • 조회수 2,347

   김태형,「버려진 신발」 중에서



   어느새 빠른 걸음이 내 몸에서 다 빠져나갔다. 그 걸음을 놓치고 나자 황무지에 널린 돌이나 주우려는 한 걸음이 나를 끌고 가고 있을 뿐이었다. 앞서 간 푸르공(거친 황무지에 적합한 러시아산 승합차)이 남긴 먼지만이 다시 마른 들판에 내려앉고 있었다. 저만치 죽은 짐승의 드러난 이빨처럼 버려져 있는 운동화 한 짝이 바닥을 뒤집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누가 신던 신발이었을까.
이제는 남은 한 짝을 그 뒤에서 모래가 신고 있었다.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했다. 누가 신다가 내버렸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모래 한 줌이 주인이었다. 가다 쓰러져 멈춘 자리, 그러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나는 우두커니 멈춰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달나달해진 발목이 시렸다. 사막을 건너가고 나면 신발은 주인을 잃을 것이기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아예 주저앉아 버렸던 것일까. 이제 신발의 주인은 모래가 되었으니, 모래는 결코 사막을 벗어나지 않겠지. 길을 잃고 지쳐 쓰러져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마저 잃은 모래는 그대로 잠시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언제쯤 주인을 잃게 될까. 나는 사막을 건너갈 것이다. 그리고 내 바닥이 닳고 끈마저 떨어진 신발은 이내 버려질 것이다. 누가, 아니 그 무엇이 내 신발의 주인이 될 것인가. 마른 모래조차 주인이 되지 못할 내 신발이 가련해지기 시작했다. 모래가 신고 있는 신발은 아름다웠다. 바람이 잠시 신어 보다 가고, 햇빛이 오래도록 발을 맞춰 보다 가고, 마지막으로 모래가 주인이 된 이 신발은 걸어야 할 일생의 길을 모두 다 걸어왔다.
어느 순간 내 걸음을 잃어버렸다. 트럭의 바퀴 자국이 지나간 사막의 길처럼 나는 어느 걸음을 놓치고야 말았다. 빠른 걸음이 다 사라지고 빈 몸만 남아 터벅터벅 바람에나 끌려가고 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내 걸음을 놓쳤다는 것을.
내 걸음에 내가 올라앉은 걸음. 어느 굽은 길에서 문득 마주치게 된 그런 걸음. 한참을 걷다 보면 몸에서 느껴지는 내 걸음. 그러나 시냇물을 따라가는 걸음은 아니었다. 10리를 건너가던 그런 걸음도 물론 아니었다.
나에게는 빗방울 걸음이 있었다. 왜 굳이 빗방울 걸음이라고 내 걸음과 마주치는지 그것은 잘 설명할 수가 없다. 노란 장화를 신은 철벅거리는 걸음. 고무줄 끊듯 출렁이는 걸음. 내 빗방울 걸음을 이야기하기에는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 저도 모르게 빗방울 걸음이라고, 이게 바로 그것이구나, 하고 문득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걸음.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걸음을 한때 나는 갖고 있었다.
버려진 신발 앞에서 나는 내 걸음과 다시 마주쳤다. 내 신발에서는 아직도 젖은 진흙 냄새가 났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다.



    작가·낭독_ 김태형 -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현대시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로큰롤 헤븐』,『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코끼리 주파수』, 산문집『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등이 있음. 문학집배원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음.

    출전_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마음의숲)
 음악_ 김태형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고비에 들어 사흘쯤, 문득 이 대지를 헤매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물상과 풍치 사이를 걷는 여행이 아니라 귀밑에서 팔딱이는 제 맥박이 저절로 감각되는 어떤 절대적인 고요 속으로 잠깐 불리어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길처럼 의심 없이 놓여 있던 시간이 뒤틀리고 확장되어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시간 속에 놓인 아상(我相)들과 무시로 마주쳤습니다. 나는 참으로 작기도 했고 크기도 했습니다. 이 시간을, 이 길을, 이 인생을 다시 걸을 수 없다는 허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고비에서는 울컥하여 오래 들여다본 물상도 이 지상에 사는 한 다시 닿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사무치게 됩니다. 찾아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게 이 대지의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흘러가는 모래가 잠시 정처로 삼아 신었다는 신발. 다음 여행에서 시인은 이 신발을 다시 만납니다. 이런 일은 세상 바깥에서도 그렇지만 고비에서는 참으로 기적이랄 수밖에요. 버려진 신발 하나 찾아 먼 길 떠도는 이 여행자의 기록을 보면서 제 잦은 몽골 출입도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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