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국 기행』중에서

  • 작성일 2013-05-23
  • 조회수 1,972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국 기행』중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절벽의 가장자리 동굴에서 입 다물고 지낸 고행자가 있었습니다. 고행자는 가부좌를 튼 채 꼼짝 않고 앉아 명상을 했습니다. 그는 허공을 한줌 베어내어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툴파'를 창조하려는 것이었지요. '툴파'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툴파'란 것은 고행자가 고도로 정신을 집중하여 허공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창조물을 말합니다. 허공을 압축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형상을 취하게끔 하지요. 그는 6년을 고행했습니다. 허공을 붙들고 씨름했지만 허공이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고분고분 해지면서 농도가 짙어지더니 키 작고 토실토실한 수도승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승이 되어 그의 앞에 섰습니다. 미소 띈 얼굴로.
'툴파'는 묵묵히 복종하는 자세로 자신의 창조자를 섬겼습니다. 1년이 꽉 차자 '툴파'가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며 심부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 맞서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화를 냈으며 점점 반항했습니다. 고행자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내 정신이 노예를 통제할 힘을 잃었단 말인가?
그는 가장 위대하고 어려운 '툴파' 해체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툴파'는 이제 솟구쳐 오를 정도가 되었으니 해체당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요. 둘의 싸움은 3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3년 째 되던 어느 날 아침, 고행자는 낭떠러지 바닥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중국인 노승이 몸을 돌리더니 심술궂은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가 내게 물었다.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그가 껄껄 웃었다.
"당신네 서유럽인들도 그와 다를 바 없는 '툴파'를 만들어 놓았어요."
"어떤 '툴파'?" "기계 말입니다. 이제 곧 그것들이 당신들을 잡아먹을 겁니다."
(부분 생략)



작가_ 니코스 카잔차키스 --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겸 극작가. 1883년 그리스 크레티 섬에서 태어났으며 . 장편소설『그리스인 조르바』,『최후의 유혹』, 『미할리스 대장』등과 희곡『카포디스토리아스』,『배교자 율리우스』등이 있음.

낭독_ 임형택 -- 배우. 연극 '염쟁이 유씨', '만선' 등에 출연. 극단 '작은신화' 단원. / 조주현 -- 배우. 연극 '감포사는 분이', '사랑, 지고지순하다' 등에 출연. * 배달하며

출전_ 『영국 기행』(열린책들)

음악_ stockmusic / world pulse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어쩌면 뻔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만 1939년이 시대적인 배경인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해 7월,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국을 방문하여 다음해 봄까지 머물렀습니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성장모습과 삶이 변화하는 과정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자신의 견해를 진지하고 설득력 있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산업화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전에 중국에서 만났던 어느 노승과의 대화를 떠올린 것이죠.
그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전쟁이 일어났고 그 자신도 지하대피소로 대피하기도 했다니 이 일화, 또는 우화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그런 게 실재 있다면 우리가 이미 만들어버린 '툴파'는 무엇일까요? 이런 말도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안 따져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추천 콘텐츠

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 관리자
  • 2024-06-27
최윤, 『사막아, 사슴아』를 배달하며

  • 관리자
  • 2023-12-21
방현석, 『범도』를 배달하며

  • 관리자
  • 2023-12-07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