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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 『도룡뇽과의 전쟁』 중에서

  • 작성일 2014-01-27
  • 조회수 1,402

카렐 차페크, 『도룡뇽과의 전쟁』 중에서


따라서 문제는 이것이다. 인간에게 과거에나 지금에나 행복의 능력이 있었던가? 분명히 개별 인간에게는 있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인류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인간의 모든 비극은 그들이 강제로 인류가 되었다는 사실. 아니 그보다는 너무 늦게, 국가, 인종, 신앙, 신분, 계급으로, 빈자와 부자로, 지식인과 비지식인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돌이킬 수 없이 갈라져 버린 후에 인류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말들을, 늑대들을, 양들과 고양이들을, 여우들과 사슴들, 곰들과 염소들을, 한데 몰아 하나의 우리 안에 가두고 당신이 소위 <사회적 질서>라 부르는 엉터리 같은 군중 속에서 억지로 함께 살게 한 다음 삶을 지배하는 공통된 법칙을 관찰해 보라. 그들은 불행하고 불만에 찬, 치명적으로 분열된 무리가 될 것이다.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 중 어느 하나 평온할 수 없는 그런 무리 말이다. 이는 소위 <인류>라는 이름의 거대하고 절망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에 대한 다소 정확한 묘사다. 국가니, 신분이니, 계급이니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서로를 밀치고 앞을 가로막지 않고는 공존이 불가능하다. 영원히 서로를 격리시키고 살거나 - 세계가 인류에 비해 여전히 넓을 때는 그것도 가능했다 - 생사를 건 투쟁 속에서 서로 싸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종, 국가, 계급과 같은 생물학적 인간 본질들로 말하자면, 동질성과 온전한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각자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든가 타자를 모두 절멸시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인류는 바로 그 과업을 제때에 수행해 내지 못했다. 오늘날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신조들과 의무들을 만들어 <타자>를 제거하는 대신 보호하게 되었다. 윤리적 강령, 인권, 조약, 법, 평등, 인간성 따위의 개념을 무수히 고안해 냈다. 우리는 우리와 <타자>를 관념적인 상위의 본질로 묶는 인류라는 허구를 창출했다. 이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인가! 우리는 윤리적 법을 생물학적 법보다 상위에 두었다. 우리는 모든 공동 사회의 존재에 선행하는 위대한 자연적 전제 조건, 즉 동질적인 사회만이 행복한 사회라는 법칙을 위반해 버렸다. 이처럼 획득 가능한 행복을 희생한 대가로 우리는 위대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꾸었다. 모든 민족, 국가, 계급, 계층에서 단 하나의 인류, 단 하나의 질서를 창출하겠다는 꿈 말이다. 이것은 참으로 배포 큰 어리석음이었다.


작가_ 카렐 차페크 –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 189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생. 극작, 동화, 소설, 동화,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집필했고 언론인, 반파시즘 활동가로도 활약했음. 지은 책으로 소설『절대성의 공장』『호르두발』『별똥별』『크라카티트』희곡 『곤충의 생활』,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어머니』등이 있음.

낭독_ 이창수 – 배우. 연극 <밤의 연극>, <농담>, <지상의 모든 밤들>등에 출연.


배달하며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 작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1936년에 나온 작품인데 말입니다. 최근에 우연히 읽었고, 감탄했으며, 몰랐던 게 부끄러웠습니다. 먼저 영미권 소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언어의 너스레’가 전혀 없습니다(체코 작가이기는 합니다). 감각과 논리가 깔끔하게 섞여있는데다 한 사람이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변화를 감행하면서도 모든 에피소드가 필요한 위치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좋은 음악처럼 좋은 책도 참으로 한정 없습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출전_ 『도롱뇽과의 전쟁』(열린책들)

음악_ Backtraxx - corporateindustrial2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양연식

추천 콘텐츠

김기창 소설가의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 관리자
  • 2024-09-26
최은미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마주』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 관리자
  • 2024-08-22
최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단 한 사람』

이제 목화에게 그분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가 없다. 우주에 마음이 있는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목화는 선하면서 악한 사람을, 의롭고도 불의한 이를,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동안 목화는 줄곧 나무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시를 바랐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목화는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없애고 싶었다. 나무를 없애면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무는 정말 나무로서 존재하는가? 목화는 그 나무가 자기 숨통을 쥐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할 때도, 구토에 시달릴 때도 자기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사람을 구하는 순간에도 나무의 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나무는 대체 무엇인가? 나무에게 집중할수록 나무의 의미는 비대해졌다. 나무에게 호소할수록 나무의 힘은 강해졌다. 목화의 질문과 호소에 개의치 않고, 고통스러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상관없이, 악하든 선하든 관심 없이 나무는 영원히 거기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소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고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피하고 싶었다. 구한 자가 악인 같을 때는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괴로웠다. 중개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목화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구한 사람들처럼 단 한 명인 목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신목화는 임천자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마침내 운명을 수긍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 목화는 생각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삶. 목화는 원하는 삶 속에 있었다. 다시, 목화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죽음. 임천자가

  • 관리자
  •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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