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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시프테,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 작성일 2015-03-16
  • 조회수 1,542





“ 이 도시에서 잠이 깨는 것은 다른 도시에서와는 다르다.”

_ W.G. 제발트, 장편
「현기증. 감정들」중에서 -



프레데리크 시프테,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어울리고 싶지 않은 귀찮은 사람들과 한자리에 있어야만 할 때는 최고의 ‘형이상학적 자리 비우기’ 기법을 쓴다. 그건 바로, 어딜 가든 항상 소지하는 소설책이나 에세이집에 몰두하는 것이다. 가령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텍스트를 하나 주고 약 삼십 분간 논평을 쓰게 하고는 그동안에 나는 지난 수업 시간에 읽기 시작했던 챕터 하나를 마저 끝내곤 한다. 끝없이 늘어지면서 나를 학교에 붙잡아놓는 교사회의 시간에는 미리 받은 회의 자료에 몰두하는 척하면서 그 속에 책을 숨겨놓고 읽는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런 건지 가까운 사람들과 있을 때도 지루해지면 이런 식으로 훌쩍 딴 세상으로 가버린다. 설령 펼치지 않더라도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정신이 부재하는 삶의 구역과 자유 구역의 경계선을 언제라도 넘나들게 해주는 친구가 내 손닿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삶의 구역은 어리석음, 범속성, 진부함이라는 세력이 점령한 구역이다. 자유 구역은 정신이 상상과 지성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구역이다. 나는 책에서 낯선 세상을 찾는 게 아니다. 내가 독서를 정신적 이동 기술로 삼는 이유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내게 가장 친밀한 거처들을 되찾기 위해서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의 동족들이 더없이 진지하게 분투하는 그 무대에서, 유독 나는 유배당한 듯 낯선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 작가_ 프레데리크 시프테 - 프랑스의 철학교사이자 작가. 1956년에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오트볼타에서 태어남. 현재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음. 지은 책으로 『철학자들의 미사여구와 젠체하는 태도에 대하여』『자질 없는 철학자』『우울한 사상가들의 매력』등이 있음.


▶ 낭독_ 유성주 - 배우. 연극 「그게 아닌데」, 「싸움꾼들」 등에 출연.



배달하며

참 시니컬한 문장으로 시작하네요.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은 가끔 있긴 해도 귀찮은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좀 걸리는 게 사실입니다. 헌데 가만히 읽어보면 이 저자가 하는 말이 충분히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사실은 저도 이럴 때가 많은 것 같거든요. 많은 이들이 ‘진지하게 분투하는’ 이 무대에서, 가끔 유배당해버린 기분이 들면 주로 무엇을 하시는지요?
저는 몇 달만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어떤 책은 선물로 주기도 했는데, 이 책은 가방에 챙겨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발트의 소설도.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문학동네, 이세진 옮김, 56~57쪽, 2014)

▶ 음악_ piano-classics n225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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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너무 좋네요.

    • 2015-03-18 01:11:2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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