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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순이 삼촌」(초판 작가의 말, 중에서)

  • 작성일 2015-06-12
  • 조회수 1,533





“ 인생을 구경해야 하고, 인생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뭔가 배울 게 생기는 것이다.”

- 토마스 만, 중편「마리오와 마술사」중에서 -



현기영, 「순이 삼촌」(초판 작가의 말, 중에서)






오년 전 등단하던 해에 얻어걸린 십이지장궤양은 나에게 퍽 상징적인 뜻이 있다. 공복 때마다 고양이 발톱으로 위벽을 살살 긁어대는 듯한 통증이 오는데, 나는 항상 이 공복상태가 두렵다. 하다못해 물배라도 채워야 그럭저럭 견뎌낸다.
이 공복에 대한 공포는 창작 작업에도 나타난다. 글 쓰고 있지 않은 시간은 나에게 굶주린 공복상태처럼 느껴져 공연히 괴롭고 안절부절 스스로를 주체 못한다. 써야지, 써야지 하고 항상 맘속으로 벼르면서도 글 한줄 쓰기가 어렵다. 아니, 글 쓰는 것 자체가 두렵다. 백지에 대한 공포. 쓰는 게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 군색한 핑계를 둘러대며 허구한 날 술 마시기가 일쑤다. 자연히 술은 궤양을 헐어뜨려 공복의 통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 뿐이다.
이렇게 백지에 대한 공포랄지, 결벽증이랄지, 아니면 어쭙잖은 핑계랄지 하는 것 때문에 그동안 쓴 글이 스무편도 못 넘는 과작이 되어버렸다. 작품의 질은 둘째치고 우선 수가 너무 적은 데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제 첫 창작집의 출간을 계기로 좀더 분발하여야 하겠다는 결심이다. 노력 부족으로 잠깐 명멸하다가 스러져버리는 미완의 작가로 전락하지는 말아야 하겠다.
그리고 아직 미지수인 나를 격려하는 뜻에서 첫 창작집의 출간을 선선히 맡아준 창작과비평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979년 10월 24일
현기영




▶ 작가_ 현기영 - 소설가.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남.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함. 소설집으로 『순이 삼촌』『마지막 테우리』, 장편으로 『변병에 우짖는 새』『지상에 숟가락 하나』『누란』등이 있음.

▶ 낭독_ 송명기 - 배우. 연극 「엘렉트라 파티」, 「세익스피어의 사내들」, 「다락방」 등에 출연


배달하며

한때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지요.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는데요, 그건 행운이나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적어도 10년 동안, 하루 여덟 시간씩 그들이 한 노력이라고 말입니다.
등단 40주년을 기념해서 재출간된 현기영 작가의 세 권의 중단편전집 중 『순이 삼촌』을 다시 읽다가 이 글을 씁니다. 선생도 젊은 작가 시절에는 “노력 부족으로 잠깐 명멸하다 스러져버리는 미완의 작가”가 돼버릴까 봐 걱정하였나 봅니다. 저는 올해로 이십 년이 되었는데요, 아직도 그런 불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도 매일매일 여덟 시간은 쓰지 않은 탓일지도 모릅니다. 좀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순이 삼촌』((현기영 지음, 창비, 2015, 360~361쪽)

▶ 음악_ BackTraxx / piano중에서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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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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