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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 「뒤축 꺾인 신발로 남은 이」

  • 작성일 2015-10-08
  • 조회수 1,260




“이 세상에는 벽으로 사는 사람과 망치로 사는 사람이 외로워하며 서로 공존하고 있다.”



조병옥, 「뒤축 꺾인 신발로 남은 이」





“선생님은 1932년 강원도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59년부터 61년까지는 UPI와 동양통신의 외신부 기자로 근무하셨고, 본(Bonn) 대학에서 정치학, 철학, 사회경제학을 공부하셨습니다. 1966년에서 67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오스트리아의 중립국 정치」라는 테마로 학위논문을 쓰던 중 세칭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7년부터 70년까지 징역 사시다가 8?15 특사로 석방됐고, 감옥 안에서도 성경번역 팀을 만들어 활동하시다가 가톨릭에 귀의하셔 영세를 받았습니다. 72년 하이네만 대통령, 프로이덴베르크 교수, 윤이상 교수 등의 도움으로 다시 서독으로 오셔서 73년엔 조병옥 여사와 결혼하셨고, 73년부터 79년까지 ‘구라파 김지하 구출위원회’를 만들어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스위스 등지를 다니며 김지하의 문학사상을 알리셨습니다. 82년에 받은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덴노 파시스무스 Den-no Fasismus; 일본에 있어서 지배체제의 형성, 구조, 이념, 그리고 기능에 관한 것」입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조 여사님과 밥장사도 하셨습니다. 85년 5월 프랑크푸르트 대학 ‘국제관계 정치학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셨고 이듬해 86년 11월 암 선고를 받아 ‘42일 단식’이라는 힘든 치료를 해내셨습니다. 완쾌되어 다시 복직했으나 불과 1년 남짓 근무하시다가 지난 4월부터 지병이 재발, 악화되어 그저께, 7월 13일, 정오 12시 10분에 우리를 떠나셨습니다.”
오로지 아파하기만 하는 사람 옆에서 2년을 꼬박 함께 아파하며 보냈던 나에겐 그의 약력이 너무나 생소한 다른 사람의 역사처럼 들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암세포로 점령당했던 남편, 임종과 더불어 줄 밖으로 내쳐진 그의 신체 모든 부분에 새로운 이름표가 붙여지면서 그가 다시 줄 안으로 들어서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중략)
수수깡 울타리 부여잡고 서서 독일나라 유학 간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닌, ‘내가 고향에 갈 때까지 나 살던 고향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쓴 둘째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속옷 고쟁이 호주머니에 고이 간직한 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시더니 오늘은 어느 구천에서, 상여 타고 라인 강변 아스팔트길을 가고 있는 아들을 지켜보실까.




▶ 작가_ 조병옥 - 작곡가, 수필가. 충남 서산 출생. 이화 여대에서 작곡 전공, 독일에서 리듬학 수업을 받았으며, 이대음대에서 작곡과 전임교수로 재직, 프랑크푸르트 청소년음악학교 강사로 일했으며, 남편 공광덕과 사별 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90년 귀국 후 이대음대에서 리듬학 강의. 음악, 미술, 문학, 예술분야 전반을 넘나들며, 발광(發光 또는 發狂)의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

▶ 낭독_ 전현아 - 배우. 연극 「차이메리카」, 「쉬반의 선발」, 「가스등」,「상당한 가족」 등에 출연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미망인들」, 「유리알눈」,「스페인연극」 등에 출연


배달하며

한 인물의 장례식에서 사회자가 낭독한 고인의 약력이다.
해외에서 이 인물이 치열하게 맞서 싸운 적(敵)은, 자신을 추방한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 경계와 차별의 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신이 벽을 허무는 망치가 되었을 때 암 선고를 받았다.
그가 이방에서 추위와 외로움, 굶주림을 견디며 그토록 보고 싶어 했고,
오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나.
아니, 1988년 7월 13일 12시 10분, 그 시간에 나는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나.
그리움이 한(恨) 서린 망치가 되도록...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라인 강변에 꽃상여 가네』 (도서출판 한울. 2006)

▶ 음악_BackTraxx-piano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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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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