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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를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0-12
  • 조회수 921

소설가 이승우
이경은의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를 배달하며

   어떤 기억은 너무 선명한데 어떤 기억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가까운데 어떤 기억은 아득하다. 그것이 기억에 붙은 그림자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림자가 카메라 렌즈가 되어 기억을 선명하게도 흐릿하게도, 가깝게도 멀게도 느껴지게 만든다고. 그림자가 너무 진해도 옅어도 문제라고 작가는 말한다. 너무 짙으면 기억이 가려지고, 너무 옅으면 기억에 혼돈이 온다고, 너무 짙으면 감정이 과도하게 들어가고, 너무 옅으면 상상이 덧붙여진다고. 

   과거의 경험이 다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 된다. 우리는 기억이 편집된 과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작은 일은 커지고 어떤 큰 일은 작아진다. 어떤 일은 짙어지고 어떤 일은 흐려진다. 어떤 일은 눈앞에 종주먹을 들이대며 억압하고 어떤 일은 물속으로 숨어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에 대해 우리는 주권이 없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은 실은 비문이다. 기억이 떠오르면 속수무책인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기억에게 당한다.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듯 기억을 조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기억은 가깝게, 선명하게, 어떤 기억은 멀리, 흐릿하게······.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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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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