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 「스매싱의 완성」을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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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가까운가, 먼가?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준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는 서울에서는 멀지만 부산에서는 가깝다. 춘천과 비교하면 서울에서도 가깝다고 대답해야 한다.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대구는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멀고 가까움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는 것도 변수다. 30분 거리면 걷기 좋은 거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분 거리도 멀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 대구가 가까운지 먼지는 말할 수 없다.
언덕 아래 서 있는 사람이 오르막길이라고 부르는 길을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내리막길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삼아 말하기 때문이다. 상대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우리는 객관적 기준을 잃었다. 그러나 타인의 자격을 따질 때 우리는 엄격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요구되는 조건과 능력이 자격이다. 테니스 모임의 회원 자격에 다른 것, 예컨대 ‘직업이나 집안, 출신 학교’ 같은 것이 끼어들면 세상은 험악해지고 시끄러워진다. 나와 ‘가까운가, 먼가’가 아니라 기준에 맞는가를 따져야 한다. 자기 자리를 기준 삼아 멀다고, 혹은 가깝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오르막길을 내리막길이라고 우기지 말아야 한다. 왼쪽을 오른쪽이라고 고집부리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부터 먼저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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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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