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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노커」를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1-09
  • 조회수 1,019

소설가 이승우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재앙에 대해 말한다. 뒤에서 치고 가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은 말을 잃게 된다.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재앙이다. 이것이 블랙코미디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역병의 시간을 지나며 경험했다. ‘거리 두기’, ‘격리’라는 단어에 들어 있던 부정적인 어감이 빠르게 희석되었다. 사람의 얼굴은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엄마’는 보면 안 되는 딸의 ‘얼굴을 두 눈 뜨고 똑바로 바라볼 거’라고 말한다. ‘너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든 간에’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엄마는 일부러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있다. 딸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든 간에’ 그 얼굴을 똑바로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그녀는 예감도 상상도 하지 않고 있다. 엄마가 각오해야 하는 것은 딸이 어떻게 변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이다. 그런데 그 각오를 하지 않는다. 

   사랑이 무엇인지 문득 깨닫는다. 사랑은 자기에게 일어날 일을 예감, 상상,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일어났고 일어날 일을 예감, 상상,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변했든, 변하든, 그 변화와 상관없이, 거기 있는 게 ‘그냥 너 자체’라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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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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