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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처, 『가만히 듣는다』를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1-23
  • 조회수 1,228

소설가 이승우
서영처의 『가만히 듣는다』를 배달하며

   책 표지에 나오는 약력을 보면 이 책을 쓴 이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시인이다. 그래서 그런가, 음악에 대한 이 책은 문학적이기도 해서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과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자극한다. 독자는 언급되는 음악을 듣기 위해 잠시 책을 덮겠지만, 음악을 듣고 나면 다시 책을 들고 싶어질 것이다. 문장들이 음악을 향하고 음악이 문장들에게 손짓하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타격하는 아름다운 책을 ‘가만히 읽는다’. 가만히 들어야 하듯 가만히 읽는 것이 좋다.

   종달새가 왜 종달새인지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종달새의 다른 이름인 노고지리가 ‘노골노골 지리지리’ 운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말을 듣고 종달새라는 이름도 우는 소리가 ‘종달종달’처럼 들려서 붙여진 것일까 막연히 추측했었다. 이 책을 읽다가 종달새의 소리를 종치는 소리로 들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자 ‘노골노골 지리지리’나 ‘종달종달’의 경박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로 종치기의 수고와 성실함이 찾아왔다. 이 글의 저자는 자신의 시 한 부분에서 종달새를 ‘종을 달고 다니는 새’라고 부른다. 그래서 종달새라고 작명의 비밀을 알려준다. ‘종을 달고 다니는 새여/종일 종을 치는 종치기 새여’. 그러니까 ‘스프링처럼 하늘로 솟구치다가 초원으로 곤두박질’하는 종달새는 온몸으로 종을 치고 있는 것이다. 알려야 할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애써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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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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