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재미나요
시
문장의 시선-
시 손미 - 시럽은 어디까지 흘러가나요
시럽은 어디까지 흘러가나요 손미 자연의 고정된 외곽선은 모두 임의적이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 존 버거 번지점프대에 서 있을 때 내 발바닥과 맞대고 거꾸로 매달린 누가 있다 설탕을 뿌리자 볼록하게 서 있던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 하늘에서 우수수 별가루가 떨어져 나는 너를 용서해야 한다 잠깐 내 볼을 잡고 가는 바람에 다닥다닥 붙은 것이 있다 나는 혼자 뛰고 있는데 돌아보니 설탕가루가 하얗다 돌고래는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라진다 주로 혼자 있네요 몸에 칼을 대면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요 풍선처럼 매달려 있어요 천궁을 읽는 사람의 말에 움찔하고 불이 붙던 발바닥 불타는 발로 어린 잔디를 밟고 하나 둘 셋 번지 땅 아래로 뛰어들 수 있을 것처럼 종종 자고 일어난 자리에 검게 탄 설탕이 떨어져 있다 침대 아래, 아래, 그 아래로 느리게 설탕은 흐른다 연결하는 것처럼 하나의 밧줄에 매달려 있는 방울 방울들 어디까지 너이고 어디까지 나인가 굳은 얼굴로 마주 보는 우리는 왜 이리 긴가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4상세보기 -
시 손미 - 생강
생강 손미 나는 생강처럼 지내 두 마리 물고기가 등이 붙은 모습으로 등을 더듬어 보면 생강처럼 웅크린 아이가 자고 있어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어둠 속에서 음마 음마 물고기처럼 아이는 울고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려고 파닥거리지 나는 침대 끝에 몸을 말고 누워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아이를 등에 붙이고 침대 끝에 매달려 외계에 있는 동료를 불렀다 시는 써? 동료가 물어서 차단했다 나는 검은 방에 누워 빛은 모두 어디로 빠져나갈까 생각하다가 내 흰 피를 마시고 커지는 검은 방에서 깜깜한 곳에서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땅속에서 불룩해지는 생강처럼 매워지는 등에서 점점 자라는 생강처럼 한 곳에 오래 있으면 갇히고 말아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7상세보기 -
시 김태경 - 늪
늪 김태경 저 연꽃들 연못 위에 핀 형형색색의 손짓이거든 지키려고 탈출을 멈춰 서던 중이었다 정제된 춤 동선이 어그러지면 안 되지 까만 별은 검은 빗방울 속에서도 빛나야 해 투명해진 작은 말이 파란 문을 되뇌는 동안 소리 없는 외침에 이끌린 건 꽃이 있어서 유일한 길목일 거야 담 밖 아닌 담 안에서 수면을 지나가면 연못 안에 공터가 있다 벽 없는 그곳에서 당신이 웅크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혼자 있었나요 눈웃음에 가려진 침묵의 푸른 눈물 스침은 베고 찌르듯 밝아서 눈부시고 말의 몸이 푸르게 변해 떨어진 비에 아프거나 당신의 눈물샘부터 투명해져 사라지거나··· 연못에 빨려 들어가도 흔적 없거든 출구였거든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1상세보기 -
시 김태경 - 춤
춤 김태경 시작이 시작 전에 끝이거든 멈춰 섰거든 이제 막 출구 찾아 나서려던 참이었다 담 너머 태양 바투 다가앉을 수만 있다면··· 발 들어 이리저리 뛰려다 본 까만 별들 흙 위에서 어지럼 같은 개미 떼가 춤을 춘다 난데없는 여린 조화에 사위가 밝아진다 여기도 저기에서도 어디서든 반짝이는 별똥별 조각인지 숲에 그린 좌표인지 잘 맞은 퍼즐처럼 정제된 고요 세계··· 머리나 몸통이 터지거나 짓이겨지거나 가는 다리가 잘려 나가게 할 순 없지 투명해진 작은 말은 함부로 밟지 않도록 움직이지 않는다 검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불현듯 젖어 가는 말발굽 어떤 끝은 시작이거든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5상세보기 -
시 김건영 - 가락시장에서는 음악을 팔지 않는다 Sing Sing한 것들을 팔지만
가락시장에서는 음악을 팔지 않는다 Sing Sing한 것들을 팔지만 김건영 모두 상자에 갇혀 있었다 보기 좋게 채소를 해방하라 여린 잎들은 줄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 잘 말린 식물은 말아 태우면서 잎 속의 검은 입을 솎아낸다 식물들이 말하지 않은 것을 써본다 뿌리 잘린 슬픔은 곧 먹히거나 냉장고 속에서 삭거나 물러질 미래가 있다는 것 판다와 팔린다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래도 판다는 귀엽다 아프지 않은 멍이 귀엽지 이 굴종 강아지야 내 말을 팔아다오 시장에서 기의(記意) 파동이 느껴진다 경매라는 이름의 강매의 틈에서 춤을 추는 나의 작고 소용없는 사상(死傷)의 소용돌이 가무십일홍(假舞十日紅) 가무십일홍(價無十日紅) 시장이 끝나면 시래기만 바닥에 가득하다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5상세보기 -
시 김건영 - 환생한 시인은 엄살 천재
환생한 시인은 엄살 천재 김건영 너는 다시 태어나서 매일 아침 변기에서 다시는 시 쓰지 말자고 다짐한다 씻고 나니 너 씻었니 뭘요 아니 시 썼냐구 진술 없는 시를 쓰려다가 진술만을 하게 되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전술이 없죠 그래서 전 술을 마십니다 시쳇말로 쓰는 시로 괜찮을까요 머릿속에서 시체의 말만이 떠오르고 있다 모든 글은 편지일 수밖에 없지요 편지(偏紙)란 그런 것이지요 누군가는 쓰기만 하고 다른 이는 읽기만 해야 하는 것 누가 너보고 이런 걸 쓰라고 했니 너는 지금 지금 변기 위에 앉아 물줄기를 맞으며 주억거리고 있다 똥을 싸면 어디나 변기 위다 봄비 내리던 날양반가의 고택 후원에서 비자나무를 보았다 비자(榧子)는 잎이 아닐 비(非)자를 닮았다는 팻말을 읽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가 끝없이 달린 나무가 있었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맞는 물줄기는 비(非)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었다 다만 내 환자만 레벨 업 모든 말은 제 주인에게 되돌아가기를 말의 수챗구멍이 모두 막히기를 이것은 역류의 시학 너 내 고료(稿料)가 돼라 원고료 5만 원이나 깎인 곳에다 거의 공짜 앞에서 문자를 쓰네 ‘술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주정을?’ 지면(地面)이나 지면(紙面)에서 내가 얼마나 더 지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잠과 술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변기 위다 버스 카드를 찍으면서 들었던 다정한 말을 떠올리며 하체에 힘을 준다 환생입니다 환(患) 생입니다 너는 전장(戰場)이 아니라 전장(錢場)에 있어서 바깥으로 노크한다 녹[錄] 녹[綠] 녹[祿] 녹슨 삶에 지쳐 월급이나 좀 받고 싶다는 문장을 썼다 벌거벗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비자(非子)처럼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6상세보기 -
시 남길순 - 돈귀신
돈귀신 남길순 만복 씨가 땅을 내놓았다. 소득 없는 농사 짓느니 비싼 값 쳐줄 때 넘기는 게 낫지, 부러움을 사며 못 이긴 듯 도장을 찍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 뒤집힌 날 만복 씨의 장 끝에서도 뭔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농사일밖에 모르던 만복 씨 논값으로 받은 돈뭉치를 들고 싸고 풀어 보며 긴 겨울을 보냈다. 만복 씨의 논 가운데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차들이 질주했다. 만복 씨가 하릴없이 집 주변을 맴돌았다. 어느 날 만복 씨는 작심한 듯 일억 원의 돈을 세기 시작했다. 시작한 일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돈 세는 일이 만복 씨의 일과가 된 후부터 그는 딱히 어울릴 사람이 없어졌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셀 때마다 일억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일억을 세다 밥을 먹고, 일억을 세다 잠을 자고, 일억을 세다 지친 만복 씨 갸웃거렸다. 모자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남을 리가 없는데, 돈 세는 만복 씨는 갈수록 완강해져서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만복 씨는 여전히 일억을 세고 식구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일억과 만복 씨를 나 몰라라 했다. 만복 씨가 돈을 세다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5상세보기 -
시 남길순 - 최초의 기억
최초의 기억 남길순 매캐하다 타오르는 불의 끝에서 거인이 춤을 춘다 톡톡 터지는 소리가 나고 골짜기가 흐르고 큰 바위 곁을 돌아오는 물소리에 모든 소리가 묻힌다 통나무를 쌓은 단 옆에서 무엇이든 한 가지씩 불 속에 던져 넣기로 한다 깊숙한 곳에 푸른 불꽃이 인다 불 속에 누가 뒤척이는 것 같다 오래 보고 있는 눈동자 속에 모닥불이 타고 귀가 먹먹하도록 불이 물과 싸우고 있다 대나무처럼 큰 사람이 내 뒤에 서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숯을 뒤집으며 불을 살려낼 때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0상세보기 -
시 이기인 - 두부 같은 부분
두부 같은 부분 이기인 두부 한 모 사러 가는 마음이 원고지 네모처럼 떠오른다 너무 빈 하고 희뿌옇다 싶어서 구멍가게를 지나쳐 어슬렁거린다 햇빛의 금이빨을 폐타이어에 묶어 지붕에 널어놓은 집을 몇 채 건넌다 더 좁은 골목을 휘적휘적 걷다 꼬리가 붓처럼 까만 고양이를 만난다 물먹은 나무들이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 바위를 기다린다 키득거리는 아이들 웃음이 호박잎 겨드랑이로 숨어버린 것일까 가느다란 풀들도 멀리서 보면 소처럼 뒷걸음을 친다 키 작은 풀들이 어울려서 햇빛의 머리를 듬성듬성 쥐어뜯는다 헛간 뒤 박새 한 마리 포르릉 뛰어올라서 사라진다 나도 어서 두부 한 모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원고지 네모 안으로 아무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순간들 한낮의 가로등은 언제나 새벽을 밝히고 쿨쿨 코를 곤다 저 멀리 거꾸로 매달려서 혼자 노는 아이의 호주머니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진 맥가이버 칼은 신처럼 반짝인다 희뿌연 두부 한 모가 오늘도 순둥순둥 칼날을 기다린다 박새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서 9개월째 두리번두리번 구인중이다 네모난 구름이 몰려와 네모난 구름과 부딪치고서 두부 같은 하루는 신나게 으깨어지는 중이다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7상세보기 -
시 이기인 - 하늘색 지느러미
하늘색 지느러미 이기인 장갑을 벗어 놓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색 페인트 통에서 꺼내 놓은 붓은 오늘의 일을 까먹은 채로 꺼끌꺼끌한 수염으로 말라비틀어지면서도 아직도 높다란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하늘색으로 뒤덮어야 하는 지붕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불안하다 어쩌다 중심을 잃어서 떨리는 몸에는 또르륵 반점 하늘에서 떨어지는 젤리처럼 향긋한 하늘색을 얼굴에 묻히고 점점 하늘로 사라지고 없는 빈 깡통 두드린다 일생 붓으로 뒤덮어 보았던 일들은 흐르는 나이를 먹어 한 꺼풀 벗겨지고도 눈꺼풀을 까뒤집으려 한다 검은 볼의 시간이 지붕에서 자꾸 흘러내리는데 시간의 눈썹을 가지런히 하늘색으로 덮어 줘야 하는 일이거늘 오늘의 팔다리와 허리는 파업이라 침대에 묶인다 당신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모두를 잃을까 하늘색 페이트 통을 물컹 사랑스럽게 껴안았으리라 지붕 페인트 깡통 수염이 짧아진 붓은 시너처럼 증발하고 고래 뱃속 같은 병실의 커튼은 하늘색으로 흐물거린다 머언 하늘색으로 헤엄치다 어느새 뇌경색을 앓는 노을의 눈가에 성가시게 달라붙은 갈매기 울음을 줍는다 하늘과 바다에는 기울어진 벽이 있고 기울어진 벽에서 흘러내리는 파도를 밑에서 위로 잡아당긴다 오늘의 붓질을 수없이 투명해지도록 해야 하는 일이거늘 당신의 무릎을 달래는 연골은 주저앉는다 붓을 쥐었던 손을 잡아 줘야 걸을 수 있는 얇은 껍질 같은 뒤꿈치가 지느러미처럼 일렁인다 하던 일을 하려고 벗어 놓은 장갑을 찾으려고 당신은 팔다리를 휘젓다 침대에서 떨어진다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2상세보기 -
시 추성은 - 여름 직물
여름 직물 추성은 반팔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내 앞을 우르르 뛰어간다 책에서는 골목 귀퉁이를 네 번 꺾을 때까지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으면 그때부터는 뒤돌아보지 말고 뛰라고 적혀 있었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종이 귀퉁이를 접는다 방에는 네 개의 모서리가 있고 인테리어를 못 하는 사람은 보통 가구를 전부 구석에 몰아넣는다는데 뭐든 잘하지는 않고 그러면서도 곧잘 아이들의 뒤를 쫓아가고 책을 읽으면서 보편을 배우는 귀퉁이의 나 사계절 내내 선풍기를 방 안에 두고 모서리에 세워 둘 적절한 물건을 고르면서도 세탁기에 넣지 않아도 될 여름옷을 잘못 돌리기도 했다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7상세보기 -
시 추성은 - 제철과
제철과 추성은 찢어진 우산살이 전봇대에 꽂혀 있었지. 너는 화장실에 간 채 돌아오지 않았고, 나의 가치는 짧은 처마에 들이치던 비가 적셔버리던 투명하고도 교묘한 계절. 사람들이 저마다 돌보는 화분 밑에서는 열매 영그는 대신 개미가 자라나고. 휘파람과 여름 모과 냄새가 시작되는데, 아무도 우산을 들고 외출하지 않았지. 왜 장미는 쓰레기장 옆에서 자라는 걸까. 울타리로 두 영역을 구분하지만. 구획 없는 두 가지는 서로를 넘나들고 있지. 향기를 쫓지 마. 오물로 가득 찬 쓰레기봉투. 그곳에 폐지가 된 나의 마음이 온몸 옹송그린 채로 누워 있을 테니까. 자기가 장미인 줄 알고. 비를 맞고 서서히 자라나겠지. 그게 잘못인지도 모르겠지. 한 치수 큰 줄무늬 샌들을 신은 채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모양을 한 나의 영혼이. 손 씻으러 간 네가 흘리고 간 아이스크림 모양대로 뙤약볕 밑에서 익어 가고 있다.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1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