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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장에서 만나는 이야기-
소설 김지연 - 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9상세보기 -
소설 정한아 -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42상세보기 -
소설 최예솔 -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작성일 2024-07-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74상세보기 -
소설 장진영 - 용서
용서 장진영 박정상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병문안하는 사람처럼. 교복 차림으로 미루어 보건대 박정상은 고등학생이었다. 과일 바구니도 무리해서 샀을 것이었다. 인디핑크 색깔의 광택 없는 종이로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일 바구니 안에 애플망고가 대여섯 개 담겨 있었다. 마치 크고 탐스러운 알 같아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박정상은 마르고 키가 컸으며 자신의 기다란 팔다리를 어떻게 가눠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큰 키 탓에 눈을 내리깔았는데 거만함보다는 주눅 든 모습에 가까웠다. 과일 바구니를 든 오른손은 안정적으로 허벅지 부근에 떨구어졌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은 불안스레 허공을 맴돌았다. 기타를 치는지 오른손만 손톱이 길었다. 처음에 부모님은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떨떠름하게 현관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아빠였다. 잡상인이거나 종교인이겠거니 싶었다. 그럼에도 문을 열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스스로 놀랐다. 심지어 안전고리도 걸지 않았다. 앞으로 아빠는 그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할 것이었다. 박정상이 “안녕하세요. 저는 박정상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거울을 보고 여러 차례 연습한 것 같은 동작이었다. 아빠는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초면이었고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군지 알 것도 같았는데, 아슬아슬하게 참아 내는 재채기처럼 그 앎을 흘려보냈다. 아주 잠깐의 평화를 위한 안간힘이었다. 박정상이 자신을 박태섭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자 아빠는 기절했다. 허물어지듯 넘어진 게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통나무 모양으로 뒤로 쓰러졌다. 퍽, 하고 전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달려와 비명을 질렀다. 박정상은 움찔했지만 정면을 바라본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듯했다. 엄마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기절했던 아빠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눈은 번쩍 뜨였다.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에서 비롯된 초인적인 힘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저 장하나가 아빠의 가슴팍을 밟고 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장하나는 외부인인 박정상의 발 냄새를 곰곰이 맡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아직 쓰러져 있는 아빠의 손바닥에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때려 달라는 뜻이었다. 장하나의 동생 장하다는 스탠드형 에어컨 위에서 식빵 자세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었다. 장하다는 사시였다. 아빠는 자신이 왜 현관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 있는지 알아차리느라 한참 헤맸다. 그러던 중에 식칼을 든 엄마를 발견했다. 아빠는 엄마와 박정상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달려들다시피 엄마를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엄마가 저지를지 모르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기절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왜 이래!” 소리치며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놔! 아니니까 놓으라고!” 몸싸움이 격해
작성일 2024-06-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1056상세보기 -
소설 정대건 -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정대건 1 얼마 전 오랜만에 박진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해 냉소적인 편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이제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면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것이 굳어져서 더욱 변화의 가능성이 적다고 여겼다. 진수와 나는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만나 무척 가깝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책을 출간하면 건네주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함께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진수와 나는 읽는 사람이 많건 적건 꾸준히 글을 쓰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그런데 출간 소식도 아닌데 모처럼 만난 그는 내게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이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짝을 만났어. 천 퍼센트 확신해. 네가 쓴 문장처럼, 현실은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서는 것 같다.” ‘현실은 늘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선다.’ 내가 이 문장을 쓸 때는, 낙관적인 기대보다 현실은 늘 가혹하다는 의미로 쓴 문장이었다. 그런데 진수는 이 문장을 반대의 의미로 인용했다. 자신이 행복에 대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상상보다 더 영화 같고 믿기지 않는 완벽한 짝이 현실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그렇게 확신에 찬 진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내가 아는 그는 불안형과 회피형의 전형을 모아 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은 결코 선의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고 만다고 불신하는 쪽이었고, 나는 그 때문에 그를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여겼다. 예비 신부인 민영은 아주 밝고 안정적인 성격의 회계사라고 했다. 뜻이 맞은 두 사람은 만난 지 100일 만에 이미 상견례도 마치고 예식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불신과 불안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와 관련된 명확한 일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SNS에서 한창 성인 애착유형 테스트가 유행이었다. ‘연애란 것은 안정형과 안정형이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사연 만들기 모임’1)이라는 SNS를 보고 우스갯소리처럼 넘기지 못하던 그였다. 불안형이라고 결과가 나온 그는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며 진심으로 분개했다. 2살까지 형성된 애착 유형이나 12살까지 형성된 성격으로 사람을 설명한다는 게 결정론처럼 느껴져서 싫다는 거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20대와 30대 동안 숱하게 불안정한 연애를 반복하며 많은 사연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너 여친이 안정형이면 안정형하고 만나지 뭐 하러 불안형을 만나?” 내 물음에 진수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불안형들이나 하는 생각이래. 안정형은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좋으면 만난다고 하더라고.” 진수는 민영과 자신이 얼마나 천생연분인지 강조하며 일화를 들려주었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예식장이 텅 비는 것을 걱정하는 그에게 친구가 없는 외톨이는 오히려
작성일 2024-06-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2 댓글수 1 조회수 879상세보기 -
소설 김본 - 안개가 시작된다
안개가 시작된다 김본 대관령에 간다는 건 여름휴가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언니와 원규 오빠는 스키 동호회에서 만났다. 겨울이면 두 사람은 스키를 타러 대관령에 갔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여름에도 가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아예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원규 오빠의 회사 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로 7월 마지막 주면 휴가가 시작되었다. 휴가 전주에 원규 오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창까지는 자기 차로 함께 가자고. 사실상 그건 제안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오빠가 전화하기 전부터 나는 기차표를 예매해둔 상태였다. 슬기가 너 바꿔 달라고 난리다. 슬기는 막 네 살이 된 나의 조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는 난처하게 웃었다. 진정으로 곤란하다기보다 즐거움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내가 슬기와 통화하는 동안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슬기를 안아 올려 무릎에 앉힌 채로 기다릴까. 아니면 슬기의 귀에 휴대전화를 대주고 있으려나. 평창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오빠는 반쯤 장난으로 내 운전에 훈수를 두었다. 오빠, 나도 면허 있어. 내가 응수하자 오빠가 그럼 다음번에는 운전해서 오라고 했다. 세대 등록 해놔야겠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상상했다. 다음번을. 오빠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를 끌고 입장하는 모습을.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않고, 내가 그곳의 세대원이 아니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상황을. 제한 속도를 초과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뜬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평창에 가까워지자 안개가 자욱했다. 눈앞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7백 미터 방면 평창IC라고 적힌 표지판을 막 지나쳤을 때, 계기판에 타이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문구가 떴다.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고 살펴보았지만 육안으로는 구별이 가지 않았다. 오빠는 뒷좌석에 앉은 슬기를 안심시켰다. 실 구멍인가 보다. 운전석 쪽으로 빙 돌아온 오빠가 말했다. 여분 타이어 챙겨올걸. 큰집에 있으려나? 오빠가 말하는 큰집이란 이모의 집이었다. 그뿐 아니라 오빠는 연구소에서 제공해 준 숙소 ― 오빠가 슬기와 함께 사는 아파트 ― 도 언니네 집, 이라고 불렀다. 마치 그곳이 언니의 소유이고 오빠와 슬기가 잠시간 얹혀사는 것처럼.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인가 싶어서 잠시 긴장했다. 그러나 오빠는 보험사에 연락할 테니 차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돌아와 운전석 문을 닫았다. 뒷자리에서 슬기가 잠금장치를 잠갔다 풀었다 장난을 쳤다. 출발하기 전 전체 잠금을 설정해 놓아서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문득 뒷좌석 문이 벌컥 열리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 슬기가 쏟아지는 상상을 했다. 이모, 밝은데 어두워. 도로 양쪽으로 솟아오른 산 주위가 뿌옜다. 안개 때문에 그래. 내가 속삭였다. 안개가 뭐야? 슬기가 물었
작성일 2024-06-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332상세보기 -
소설 김숨 - 빨간 집에 사는 소녀
빨간 집에 사는 소녀1) 김숨 1 내 방엔 거울이 있어. 빛— 빨간색. 세상의 모든 빛— “지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2 지금, 지금, 그리고 지금, “난 다른 곳에 있고 싶어.” 3 딱딱하게, 딱딱하게, “내 사랑을 받아 주세요.” 다른 곳에선 똑같은 노래가 다르게 흘러, 다르게 슬프게, 다르게 쓸쓸하게, 다르게 외롭게. 다른 곳의 다른 나. 난 나를, 난 나를, 딱딱하게, 딱딱하게, 빨갛게, “난 설레고 싶어.” 4 다섯 살 때 처음 빛을 봤어. 네 곁에, 내 곁에, 빛은 환한 어떤 것. 아, 난 날······. 다섯 살 때 처음 빨간색을 봤어. 엄마가 빨간색을 가져다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았어. 빨간색을 나는 외우고 외웠어. 내가 빨간색을 외우자 엄마가 빨간색을 치우고 노란색을 놓았어. 나는 노란색을 외우고 외웠어. 그리고 파란색, 흰색, 검은색.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들어졌어. 세상은 다섯 가지 색깔로 만족해. 다섯 색깔 무지개, 다섯 색깔 도마뱀. 분홍색은 꽃에게. 초록색은 달에게. 내 얼굴에서 45도 사선 밑에 놓여 있는 빨간색만 나는 볼 수 있어. 내 방 거울은 흐르지 않아······. 5 딱딱한 벽에 딱딱하게 거울이 걸려 있어. 거울이 날 봐. 거울은 날 봐. 거울은 엄마 몰래 울고 있는 날 봐. 난 날 안 봐. 음, 흐른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건 오직 하나. 6 빨간색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 난 흥분해 소리 질렀어. “엄마, 난 화가가 될 거야!” 빨간색 크레파스가 흰 도화지 위를 신나게 날아다녔어. (그녀의 엄마) 뭘 그리는 거야? (그녀) 집! 빨갛게, 빨갛게, (그녀의 엄마) 뭘 그린 거야? (그녀) 집! 엄마, 난 집을 그렸어! (그녀의 엄마) 네가 그린 집을 만져 보렴. 엄마가 내 손을 내가 그린 집으로 데려갔어. (그녀의 엄마) 집에 창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문이 없네. (그녀의 엄마) 집에 지붕이 없네. 난 창문을 본 적 없어, 난 문을 본 적 없어, 난 지붕을 본 적 없어. (그녀의 엄마) 집에 나무도 없네. 7 집에 나무가 있어야 해? 세상에 나무가 있어야
작성일 2024-05-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445상세보기 -
소설 성혜령 - 원경
원경 성혜령 건강검진을 12월 마지막 주까지 미루는 사람이 자기 말고도 이렇게 많으리라고 신오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기실의 긴 좌석 중간중간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신오는 한구석에 서 있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실 앞 복도는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헐렁한 가운에 느슨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핸드폰을 보며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오는 이들 중 내년에는 따뜻한 휴양지에서 연말을 보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다. 혹은, 오늘 치명적인 암이나 뇌동맥류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은?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에서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 신오는 모든 일이 가능하지만 대개 나쁜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되도록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했다. 불행은 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다. 복부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어랏?” 하고 실없는 소리를 내며 배꼽 부근을 세게 눌렀을 때도 신오는 방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가 차가운 젤을 다시 묻히고 초음파 단말기를 문지르다가 복막에 종양이 보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래서 요새 변비가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대형 병원에 가서 생검과 CT, MRI 검사를 마치고 소화기내과 교수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신오는 회사 메신저를 보고 있었다. 몇십 억 단위 공공사업의 수주가 걸린 입찰 제안서의 마무리를 앞둔 시점이었다. 병원 검사로 연차를 낸다고 했을 때 팀원들은 모두 별일 없을 거라고, 하루 푹 쉬고 오라고 말했지만 메시지를 보내면서 신오를 계속 태그했다. 신오는 그날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젊고 피곤해 보였다. 예약을 가장 빨리할 수 있었던 의사였으니 어쩔 수 없지, 신오는 생각했다. 의사는 신오가 자리에 앉자 간단한 인사도 없이 모니터 화면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마우스 커서로 신오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음영을 짚었다. 여기예요, 여기. 의사는 약간의 승리감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복막의 종양은 전이 암이고, 여기가 원발 암이라고. “이게 숨어 있어서 찾기 어려웠거든요.” 의사는 다시 한번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췌장하고 담도 사이인데 위치나 크기가 좋지 않다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당장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로 크기를 줄여 보고 수술을 잡아 보자고. 신오의 핸드폰이 또 진동했다. 신오는 치료를 이주만 미뤄도 되냐고 물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이주 후에 마감이라. 의사는 처음으로 웃어 보
작성일 2024-05-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2 댓글수 0 조회수 1710상세보기 -
소설 하가람 - 야생 식물원
야생 식물원 하가람 식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로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열대와 지중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식물이 자란다고 했다. 한 달 전 나는 식물원 근처에 있는 여러 호텔을 찾아 은규에게 링크를 보냈다. 보통 때의 그라면 어디든 좋다고 했을 것이다. 레스토랑도, 카페도, 동네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조차도 모조리 내 선택에 맡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은규는 이미 예약한 곳이 있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은규가 보내 준 링크를 열어 보았다. 넓은 통유리 창 너머로 식물원과 공원이 내다보이는 스위트룸이었다. 나는 조금 들뜬 채 답장했다. — 우리가 만난 지 곧 1년이래. 믿어져? 1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유별났고 은규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전에 사귄 여자친구는 단 두 명인데 각각 4년, 5년을 만났다고 했다. 매번 석 달도 채 넘기지 못하는 나와는 달랐다. 이따금 은규에게 이전 연인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응응, 하며 대꾸해 주던 은규는 내가 그녀들의 음악 취향이나 살던 동네처럼 구체적인 정보까지 캐묻자 태도를 바꾸었다. 기억 안 나. 그는 말했다. 다 옛날이야기라고. 그 후로는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들을 생각했다. 눈, 손톱, 말투, 그리고 신발. 나와 닮았을지, 닮았다면 얼마나 닮았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를지도. 상상을 이어 가다 보면 늘 한 가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은규는 한 번도 애인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와 밤을 보내는 일이 오늘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서른을 넘긴 남성에게서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가 처음인 게 좋았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와 그녀들을 구분 지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햇볕에 데워진 창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보았던 화려한 꽃과 기다란 나무들을 떠올렸다. 노랗고 푸르고 분홍빛이 맴도는 공간을. 여름 휴가철이었고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졸음 껌을 씹는 은규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너 힘들어.” 은규가 말했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는 내게 차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보면 놀랄걸? 너무 잘해서?” 나는 허리를 세운 채 한 손으로 반원을 그려 보았다. 휙휙. 입으로 소리 내며 운전대를 쥔 그를 따라 했다. 그가 웃었다. 머릿속으로 주행하기. 그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캠퍼스 변두리에 있는 H관 1층, 5평 남짓한 주차관리실에서 상상력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낡은 소파, 책상 위에 시간별로 놓여 있는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차권들. 지겨운 서류, 서류, 서류. 드물게 실장이 자리를 지키는 날이 아니면 대체로 혼자 그곳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찾아와 주차권을 사거나 정기 등록을 마친 후 돌아가면 나는 모니터에
작성일 2024-05-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3 댓글수 0 조회수 1704상세보기 -
소설 김학찬 - 끗
끗 김학찬 1 크리스마스 선물은 컴보이가 좋겠습니다. 착한 어린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건 오직 현대 컴보이뿐이니까요. 컴보이는, 당신도 기억하실 겁니다. 벽돌을 치고 버섯을 먹는 슈퍼마리오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게임기였으니까요(컴보이는 닌텐도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출시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혼자 외가에 있었습니다.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서도 울지 않는 착한 일곱 살이었고, 컴보이를 받을 자격은 충분했습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슈퍼마리오 노래를 불렀습니다. 립스틱으로 화장실 거울에 ‘컴보이’라고 써두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도 선물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혹시라도 할머니가 삼성 게임보이나 대우 재믹스를 사오면 피차 곤란해질 테니까요. 유치원 차석 졸업 예정이었던 저는 (분하지만 도저히 지영이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산타의 비밀 따위는 모른 척하며 크리스마스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머리맡에 놓인 컴보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손자의 웃음소리를 할머니에게 들려줄 계획이었습니다. 자고로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조잡한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려 있던 선물 상자는 고작 담뱃갑만 했습니다. 달랑달랑,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할머니가 골초라도 손자한테 담배를 선물로 주진 않을 텐데······. 저는 손을 떨면서 포장지를 풀었습니다. 휴, 다행히 담배는 아니었습니다. 포장지 안에 든 것은 화투花鬪였습니다. 화투와 슈퍼마리오는 형 동생 사이입니다(물론 화투가 형입니다). 1889년 화투 제작으로 시작한 닌텐도는 (슈퍼마리오는 8억 장이 넘게 팔렸습니다) 지금도 화투를 생산합니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선물이 아주 어긋나지는 않은 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화투로 하늘을 날고 불꽃을 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할머니는 전자오락보다 더 재미있는 걸 가르쳐 주겠다며 화투패를 챠르륵 펼쳤습니다. 화투를 알면 일 년 열두 달을 직접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게 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속삭였습니다. 나이만큼 패를 섞고 (할머니는 예순일곱 번까지 패를 섞고 돌아가셨습니다) 짝을 맞추면 그날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분하지만 저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라는 말이 저를 충동질했습니다. 만약 한 살만 더 많았거나 적었다면 할머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운명에 비하면 만약은 부질없는 단어고, 화투점占과 민화투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금방 화투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화투점은 하루에 한 번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두 번 보면 반칙이니까요). 하루 종일 혼자 중얼거리며 화투를 (1인 2역으로) 치다 보면 스스로가 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엄마와 떨어져 있어서 심란한데, 자아정체성마저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작성일 2024-05-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2 댓글수 2 조회수 1804상세보기 -
소설 김이설 - 흉통
흉통 김이설 놀라지 말고 들어. 엄마의 첫 마디에 고개를 들고 허리를 세웠다. 책상 위에는 가맹운영신청서, 가맹점 운영계획과 자기소개, 가맹개설자금축적주계좌잔고 등의 서류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하루에 검토해야 할 지원자 서류는 끝이 없었고, 서류 심사 후 면접자와 점주 선정은 매일 누적되었다. 전화벨 소리와 통화하는 목소리, 조심성 없이 자판 두드리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딸깍거리는 마우스 클릭 소리까지 사무실은 분주했다. ㅡ 은수야, 듣고 있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ㅡ 듣고 있어. 말해. 큰 숨을 들이켠 후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ㅡ 엄마가 며칠 병원에 입원했었어.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느냐는 원망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잠깐만. 나는 조용히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부장과 이야기를 하던 서 과장이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전화기 너머 멀찍이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아니, 거기 말고. 그 안쪽에! 다시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고, 엄마의 대꾸. 전화 끝내고 해줄게,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잖어! 그사이 나는 옥상에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갔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처럼 꾸며 주로 흡연실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세밑의 공기가 매서웠다. ㅡ 그래서? 병원에서는 뭐라는데? ㅡ 네 아빠가 갑자기 안방을 정리한다고 다 들쑤시고 있다. 왜 저런다니. ㅡ 엄마. ㅡ 그래, 알았다고. 그저께 엄마가 혈변을 눴어. 그래서 네 아버지랑 응급실로 갔는데, 이것저것 검사하더니 입원시키더라고. 거기서 또 뭘 검사하라고 해서 다 검사받고. 어제 퇴원했어. 엄마는 내 질문과 상관없이 자기가 준비한 대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새해가 되면 엄마 나이 일흔여섯. 사십대 때 큰 병 앓은 이후로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이제까지 잘 버텨 준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나는 담배를 꺼냈다. ㅡ 은수야, 듣고 있지?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오빠가 은수야 시간 있니? 라고 묻는 것보다, 동생이 언니 지금 바빠? 라고 묻는 것보다 무서운 말이 엄마가 건네는 놀라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놀랄 이야기라는 뜻. ㅡ 직장암이래. 그런데 어쩐지 놀랍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당황하고, 경황없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얼마나 진행되었대? 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너무 사무적인 말투였나. 잠시 뜸을 들이던 엄마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ㅡ 많이. 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제야 엄마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 올라왔는지 홍보팀 직원 둘이 내게 눈인사를 하고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 과장이 어깨를 툭 친 건 막 엄마와 전화를 마친 후였다. “심각한 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눈은 못 속이는데. 분명 무슨 일 있어. 오빠가 또 속 썩여? 아니면 동생? 석훈 씨는 아닐테고.” 한 팀
작성일 2024-04-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1671상세보기 -
소설 이원석 - 알파벅스
알파벅스 이원석 사라진 마을의 이름은 소몽笑夢이었다. 소몽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유속과 깊이가 적당한 계곡이 가까워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던 관광지로, 몇몇 주민들은 일찍부터 부업으로 관광객들을 재워 주며 얼마간의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촬영과 유명 연예인의 방문이 화제가 되어 마을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관광객이 늘어나며, 생업과 부업의 위치가 바뀌기 시작했다. 살던 집을 개조해 전문적으로 민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종국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그 일로 먹고살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같은 마을 주민들끼리 동종 업계 종사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자신이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다른 집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소개받은 집에서는 소개해 준 사람에게 작은 보답을 하는 일종의 중개업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한동안 그들의 사회적 유대감이 혈족의 그것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회학자들도 있다. 소규모 민박집이 성행하던 어느 날 ‘물꼬리 펜션’이라는 이름의 첫 대형 독채 펜션이 문을 열었고 관광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넓고 쾌적한 시설, 안전한 보안과 차량 픽업 서비스 등은 특히 가족 단위 손님들이나 젊은 세대 단체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읍에 하나 있는 2금융권 은행에는 대출 상담을 받는 주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리하여 소몽리는 다시 한 번 변화의 바람에 휩쓸렸다. ‘물꼬리 펜션’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른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독채 펜션이 생겨났고, 일대에서는 가장 유명한 펜션 단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를 이어 펜션을 운영하는 집도 있었고 외지인이 지은 펜션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주민도 있었다. 관광객들은 해마다 늘어 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거라고 사회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숙박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여름 한철 외지인들이 쓰고 간 돈으로 겨울을 견뎌야 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숙박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고, 여름이면 집과 집 사이로 고성이 오가거나 주먹다짐이 일어나는 일도 빈번했다. 산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의 부주의한 행동도 골칫거리였다. 술을 먹고 입수하는 외지인은 해마다 몇 명씩 있었고 출입이 금지된 곳에 억지로 들어가 뱀에 물리거나 말벌에 쏘여 구급차에 실려 가는 사람도 많았다. 몇몇 부덕한 업주들이 성수기 숙박 요금을 지나치게 올려 받아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주민들이 외지인을 대상으로, 외지인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범죄의 빈도도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은 ‘이래서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간혹 어린아이가 태어나도 가장 먼저 그런 것을 가르쳤다.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법.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는 법. 그러나 영특한 아이들은 어른들
작성일 2024-04-0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1429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