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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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숫자의 기억월장원 선정
아무것도 아니던 무언가를 기억하게 되는 일이 있다. 그건 대체로 특별해지기 때문이다. 일상 여기저기에 묻어있어서 채 알지도 못했던 것을 내가 똑바로 바라보고 알아채게 된다면, 그것은 특별해졌기 때문. 나에게는 어떤 숫자들이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가장 먼저 숫자들을 외운다. 생일, 전화번호, 그 사람에게 의미있는 날짜나, 내가 그 사람을 만난 날짜 같은 것. 시계를 볼 때, 달력을 볼 때, 수학 문제를 풀 때 닮은꼴의 숫자들이 나오면 괜히 반가워진다. 너는 여기에도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그러면 나의 지평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원래라면 스쳐지나갔을 작은 일들에 곤두선 무수한 촉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이다. 특히 그 숫자로 가리키는 시간에 도착하면, 온 세상을 네 안에서 사는 것만 같아 내가 눈부셔진다. 하루에도 두 번씩, 똑같은 시간은 돌아오기 때문에 나는 잊고 있다가도 너를 떠올린다. 그러면 지금을 살아가느라 바쁘던 것도 어디 깊은 곳에 있던 사랑 닮은 정서 앞에서 전부 고요해진다. 때때로 호들갑처럼, 때때로 딱 일분치의 구원처럼. 나는 그 시간을 대한다. 고대하던 일을 그 시간 즈음에 성공하게 되면 전부 너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인 것만 같고 울다가 시계를 봤는데 낯설지 않은 숫자가 보이면 괜히 시간마저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옹송그린 어깨가 조금 판판해진다. 그런 기억이 있다. 초콜릿을 사먹고는 그 두꺼운 종이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접으려는 찰나에 보인 유통기한. 그 날짜가 올해 너의 생일이라서, 나는 여전히 다 먹은 초콜릿 껍질을 가지고 있다. 모난 데 없이 어딘가 정갈하기까지 한 숫자를 보면서 내가 퍽 우습게 느껴졌다. 원래 괜한 일에 과대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사랑의 형태를 가장 명확히 설명하듯이, 나는 사랑을 하는 동안 몸집을 불려서 감탄하고 어디서 빌려온 겉멋든 비유들에 고개를 끄덕인다. 초콜릿 껍질을 가지고 있는 미련하고 어이없는 일에는 중경삼림을 떠올린다. 맥이 들어맞는 곳 하나 없지만, 사랑과 유통기한 너의 생일과 만 년을 견주어 보면서 그렇게 한다. 마음의 갤러리에는 이제는 단번에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된 숫자들이 다양한 조형물과 회화의 형태를 하고 걸려 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어, 이 숫자 너무 익숙한데 하고. 그러면 옆사람은 그렇게 묻는다. 숫자가 익숙하고 말고 할게 뭐가 있어? 그렇지만 나에게는 생각보다 강한 기억, 생각보다 화려한 추억이 그 밋밋한 획 안에 담겨있다. 누군가와의 시간을 정리하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기면, 나는 숫자를 잊기 위해 애쓴다. 더 이상 시계를 보고 반가워하지 않기 위해 생겨버린 습관들을 나의 윤곽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이른 아침 기상 시간에 익숙해져버린 것이 억울한 퇴사자의 마음처럼 그렇게. 혼자 자조하고 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준 일을 낯설게 후회하다가 분명히 나의 것이던 이 숫자가, 누구로 인한 것이었는지가 어렴풋해질 때 쯤 나는 다음 돌계단을 밟는다. 계단은 언제나 다음 칸이 있고, 그래서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작성일 2024-06-27 작성자 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8상세보기 -
소설 고백록월장원 선정
선생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목적이어야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차라리 독재시대 때 태어나 민주화 운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소년병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민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하나의 총탄이 되어 적군의 숨통은 끊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하루종일 갇혀있는 것은 제가 원하는 삶은 아닙니다. 사실 저는 문학과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예술이라는 불꽃에 몸을 바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며 섹스하고 고뇌하며 몸을 부수고 불멸한 작품을 낳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제가 재능이 없단걸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이창동 감독님은 제 나이 때 온갖 백일장을 다 먹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변변찮은 상 하나 받은 적 없고 맨날 방구석에 박혀 쓰레기 같은 글이나 끄적입니다. 그런 제가 감히 문학을 꿈꾸겠습니까? 그저 명작이라 소문난 소설 찔끔찔끔씩 읽고 이동진 평론가가 4점 이상 준 영화나 찾아보겠죠. 그리고 꿈을 꾸겠죠. 그리고 스스로 예술을 꽤나 사랑한다고 우쭐되겠죠. 아 한심해. 스스로 비웃음이 납니다.근데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남이 나를 까기 전에 스스로 먼저 까는 것은 자기애랍니다. 남에게 고작 그정도 영화보고 그정도 소설보고 아는 척 하냐고 까이기 싫어서 저는 스스로 까는 겁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소설의 냄새가 전혀 안나는데 소설이랍시고 쓰고 있는 이 것 조차도 그냥 이렇게 솔직하게 쓰면 뭐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생각으로 쓰는 겁니다. 저도 압니다. 저는 창의적이지도 못하고 글을 잘 쓰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씁니다. 할 수 있는게 솔직한 거 밖에 없거든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까이기 싫어서 그런겁니다. 참으로 비겁하죠. 저는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게 소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토록 나약하고 비겁하고 열등감에 쩔어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항상 법조인이라 되라 하시지만 역시 저는 문학이 하고 싶습니다. 영화가 하고 싶습니다. 물론 변호사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 변호사 멋지잖아요. 근데 제가 과연 가능할까요. 그 어렵다는 시험을 통과하고 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불확실하고 제가 과연 변호사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희피하는 거에요. 맨날 스스로 재능있다고 자위하지만 저이기에 저는 압니다. 제가 어중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항상 어중간한 창의성에 어중간한 성실성 어중간한 암기력 저같은 사람이 있어야 중산층이 생기는 거 겠지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슬픕니다. 저는 사실 예술을 하고 싶으면서도 평범한 문학을 하며 평범한 영화를 찍으며 살다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불멸한 작품을 만들고 죽어 불멸히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이 언제쯤 죽고 싶냐 물어보면 항상 대답합니다. 나는 안죽을꺼야. 영원히 살꺼야. 그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할 때 특별히 보이고 싶은 마음 반 진심 반입니다. 그리고 그 진심에는 진짜로 육체적으로 불멸한 삶을 산다
작성일 2024-06-27 작성자 백석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95상세보기 -
시 시간 무빙워크월장원 선정
나는 이동이 없어 동상이라 불렸다이동 없는 존재가동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해가 지고 달이 피는 것과 같은 시간에서 일어났다시간을 걸어보자동상이 어떻게 걷냐고?잘 걷지두 발을 이용해서아님 두 개의 최신 발을 사용해서시간의 길에는서로의 발들이 이어져 있어고양이, 호랑이,표범강아지, 늑대부엉이,올빼미사람, 원숭이, 오랑우탄사람과 호랑이, 강아지, 올빼미모두 발이 묶인 동상이지만우린 걸어가고 있어무빙워크를 타고 시간 길을 걸어보면다들 웃고 있네모두 똑같은 동상이 아니었어표정이 침대에 스며들거나얼굴을 오늘 아침 냉장고에 박아 놓거나나는 이불과 함께 꽃을 접어얼굴을 벽장에 쑤셔넣었어시간의 무빙워크에는 이를 꼭 지켜야 한다이것이 모두가 정한 규칙이니까동물들이 무빙워크에서 움직이지 않아 동상이 된 것처럼우리도 동적이지 않아 동상이 되었어표정도 가구에 들어있고우린 그걸 동상이라 불렀어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이 길이 계속 이어지고우리의 규칙도 동상되어이제 더 이상 변화는 없고무빙워크는 너무 차가웠다모두의 발은 동상걸려 자리를 잃었다
작성일 2024-06-19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2 댓글수 0 조회수 313상세보기 -
감성&비평 짐을 말하다{김애란-비행운-서른}월장원 선정
내가 가는 정신과 건물을 포함한 그 옆 건물까지 모두 학원으로 꽉 채워져있다. 그 곳을 갈 때마다 웃음기 없는 무표정한 학생들을 많이 본다. 특히 진료가 끝난 19시 쯤에는 돌덩이같은 가방을 등에 업고 버스에서 내리거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막 학원에서 끝나 본인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등에 업고 가는 등의 행동을 보기도 한다. 이들을 보면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나와 다른 무언가가 등에 추가되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등에 무거운 짐이 추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솔직히 난 모르겠다. 아니 아는데 모르는 척 행동하는 것이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내가 학원을 다녔던 중2 시절 우리 가족은 코로나적 어려움과 더불어 아빠 사업의 어려움으로 집이 많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 때 학원 원장 선생님께 엄마께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수업을 이어가기 힘들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은 당연히 그만두라고 하실줄 알았는데 원장 선생님은 나를 안았다. " 제 월급에서 까더라도 제가 가르칠게요. 공부할 마음이 있는 아이를 막으면 안되잖아요."와 같은 말을 하셨다. 그래서 기침이 시작 되기 전까지 난 그 학원을 다녔다. 원장 선생님은 가끔 책값을 받지 않으시거나 책값에서 만원을 빼서 주시거나 체험학습 때 나에게 3만원이라는 돈을 주시면서 "가죽지마. 힘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원장 선생님의 선의에 많이 감사했다.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 죄송하고 시험을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이 생겼었다. 어찌보면 내게는 집안의 어려움과 더불어 학업이라는 큰 부담이 생겼던 것 같다. 김애란의 소설집 의 이라는 작품의 주인공 수인은 옛날에 재수생이었다.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서울에 있는 작은 독서실이었던 사임당 독서실에서 잠을 잤다. 다른 재수생들이었다면 재수 학원이나 일반 고시원애서 생활을 했겠지만 수인의 가족도 우리 가족처럼 힘들게 하루, 하루를 살아갔기 때문에 그녀의 등에도 짐이 있었다. 바로 부모님과 학업이라는 어느 사람에게는 무겁고 어느 사람에게는 가벼운 그런 무게가 등에 있었다. 수인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아마 언니 눈에 제 뒤태도 비슷하게 보였겠죠? 우리 둘 다 꿈 말고도 이고 있는 것이 많으니 {290p]"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뒤태는 수인의 말처럼 모두 비슷할 것이다.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는 부모와 학업이라는 짐이 있을 것이고 청년들은 생개와 친구가 있을 것이고 중년에게는 가족과 생계라는짐이 있을 것이고 노년에는 죽음과 사랑이란 짐이 있을 것이다. 이 때 수인이는 그저 열심히 사는 것으로 위 짐들을 내려 놓으려고 했다. 수인은 이런 짐들을 학원 강의, 다단계 회사 등 살인을 제외한 나머지 일들을 물, 불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위 책의 제목처럼 非 행운의 늪에 빠졌다. 다단계 회사에서 비 인륜적 행위들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본인을 사랑해줬던 제자 혜인을 다단계 불행의 늪에 빠지게 함으로 몸에 이고 있는 짐보다 더 한 죄책감이 더 생겼다. 특히 혜미가 자살시도
작성일 2024-06-10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865상세보기 -
감성&비평 예술과 자기비평월장원 선정
어렸을 적에는 모든 예술이 결국 회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 고흐와 모네, 르누아르의 작품을 눈 앞에서 직접 목격했을 때, 그 생각의 골은 깊어져갔다. 결국 문학이란 마르셀 푸르스트와 가 전부라고 생각했고, 음악은 드뷔시가, 영화는 큐브릭과 로이 앤더슨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작품을 읽거나 보거나 들을 때, 그 어느 것 하나 섬세한 터치가 없는 작품은 전부 폐기물이라고 너무 섣부르고 성급하게 단정 짓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내가 만난 것은 다름아닌 박서보였다. 거의 최초로 본 추상화였던 묘법 No.060728은, (처음에는 그냥 지나칠뻔 했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이상하고 별 것 없는 단색화였지만, 그 속에는 필사인지 사족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그래서 지독할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사람의 정신(혼)이 있던 것이었다. 예술 학교에서는 ‘예술’이란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예술’에 관한 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박서보를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고흐와 낭만주의, 양산품에 지나지 않는 앤디 워홀과 현대미술양식, 건축양식만을 늘어놓고, 습작생들이나 만들 모조품들을 만들도록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박서보를 몰랐다. 내가 만난 그곳에는, 여지껏 내가 보아왔던 세계를 통째로 갈아엎을 어떠한 것이 존재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 후, 나는 세상을 다시 보았다. 한동안 추상화에 빠져 있었고, 이우환, 김환기, 김기창부터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 마리아, 이베 등의 화가로부터 눈을 땔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무수히 많은 것들을 다시 경험했다. 그리고 안 사실이 있다.‘예술에는 끝이 없다.’문학은 분명 블랑쇼에서 끝났고, 영화는 고다르(혹은 홍상수)에서 끝났으며, 음악은 존 케이지에서 끝났다. 그 찬란한 예술의 시대를 끝낸 이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들의 것을 사유한 이들이다. 블랑쇼는 문학을 사유하는 문학을 했고, 고다르(혹은 홍상수)는 영화를 사유하는 영화를 했다. 존 케이지는 음악을 사유했다. 예술은 언제까지나 존재와 죽음과 삶에 대한 고찰이 아닐 수 없는데, 그들은 그것 전부를 사유하는 방식을 사유하므로서, 끝내 존재의 방식(예술 형식)를 사유하는 데까지 도달했다. 그들은 예술의 형식을 끝낸 이들이다. 그러므로 현재 예술가라는 이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그 형식 속에서 이미 끝난 일들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모든 작품들은 언제나 부족했다. 아무리 대단해도, 또는 세간에서 평가를 높게 받더라도, 그것들을 ‘진보적’이거나 ‘새로운’ 것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제 그 무엇도 ‘예술’이 될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차가워졌고, 냉대해졌으며, 낙담했다. 본래 나는 ‘글틴’의 ‘소설 게시판’을 주된 무대로 삼고 활동했다. 나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세웠다. 그러나 소설을 쓸수록 나 역시 과거의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만 같았고,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좋은 글을 쓰지 않을 바
작성일 2024-06-10 작성자 화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96상세보기 -
수필 나의 조금 아픈 사랑월장원 선정
그렇다. 내 인생은 미치도록 복잡하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 복잡하고 답답한 사실을 증명해보고 싶어 쓰고 버린 내 글들과 시간이 참으로 아까울 뿐이다. 모두가 어지러운 인생, 모두가 특별해지기 위해, 위대해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 세상에서 나 위다윗이 얼마나 특별한지 듣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뭐, 그렇다고 내가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지하철만 타도 남고딩들이 신나게 욕을 쏟아 붓는 그 “문제적” 기독교 (어떤 불특정 다수에게는 *독교이겠지만)를 독실하게 믿고, 그 신앙에 자신의 젊음을 던진 목회자 부부의 외동아들이자 어릴적부터 동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꼈으나 그걸 억제하며 버텨온 꽤 인내심이 특출난 사람이라고 말하면 적당할 듯 하다. 참고로, 이미 보편적인 상식이지만 기독교는 동성애를 “사랑”의 형태가 아닌 인간 본성의 “뒤틀어짐” 내지는 인간행위의 “탈선”으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오늘날 정통 개신교 내에서 동성애라는 죄와 그 죄를 행하는 LGBTQ 집단의 사람들은 주로 공감과 긍휼 대신 극심한 혐오, 경계와 거절을 받는 대상이다. (기독교인들도 당연히 양심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우가 노골적이다기 보다는 동성애자들은 그러한 대우를 받는 게 합당한 사람들이라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것에 가깝게 보여진다.) 부모님께서 내가 여성의 몸보다 남성의 몸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내가 사춘기를 시작할 즘,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두분 모두 굉장히 속상해하셨지만 기도와 통제 속에서 충분히 꺾일 수 있는 죄의 씨앗이라고 여기셨던 것 같다. 물론 이 씨앗은 보수적인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했고 오늘날 나는 더이상 내가 남편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며 신앙안에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 없게 되는 남자가 되었다. 내게는 게이라이프 아니면 독신밖에, 적어도 솔직하게는, 선택권이 없게 느껴진다. 다행히 성경은 독신라이프를 반대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기독교 핵심교리를 확립했던 사도 바울도 독신으로 살았다. 문제는 내가 그걸 원하는가이다. 아니, 내가 그걸 견딜 수 있는지이다. 아무리 내가 애늙은이라도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갈망은 곧 스무살이 될 나에게 다른 이성애자 젊은이들보다 덜 강하게 일어나진 않는다.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이 안갈지 모르겠지만, 난 동성애가 죄라는 명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동성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과 오해, 적대심에는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라는 욕구는 한 남자의 한 여자를 향한 자연스러운 욕구만큼 실제이며 이 끌림은 육적인 필요를 넘어서, 한 인간의 영적, 정신적인 필요까지를 담고 있다. 동성애에 대해 말할때 흔히 내 교회 지인들은 “게이들은 온전히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다른 남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인사이더로서 분명한 것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이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호간의 케미, 친밀감, 대상의 지적 능력,
작성일 2024-05-23 작성자 위다윗 좋아요 2 댓글수 0 조회수 478상세보기 -
시 거울 속에 핀 사분면 아파트월장원 선정
하나, 둘 쌓여가는 공간이그레프의 여러 사분면으로 그려져요불이 켜진 집이 한 곳이 있으면다른 집들도 모두 불이 켜져 있어요이 건물은 모두의 공간이에요아이, 중년, 청년, 노년개, 고양이, 토끼, 거북이, 개구리, 돼지, 오리비올라, 튤립, 해바라기, 블루베리 나무, 장미, 대나무, 민들레투명하게 보이는 복도는 거울에 피어있는 무한반복이다무한반복의 거울은 모두가 만든수은의 빛으로 복도의 끝과 시작을 비추네누런 깔라만시 향이 피어나는 전등은모두를 사분면의 끝자락으로 몰고가요X축의 +- 의 끝Y축의 +- 의 끝깔라만시의 향은 모두의 발이 위로 올라가게 한다식물들은 발이 생겨 올라가고동물도 다리를 들어 올라가고사람들도 성정판을 자극하여 절벽까지향은 아파트 안을 돌아다녀요위로도 올라가고아래로도 내려가고사분면의 증가로 계속 앞으로 뚫고 가고깔라만시 즙은 무한대로 생성 중이다모두들 급한대로 계속 절벽을 타고 앞으로 밀려가고개굴, 개굴, 개굴, 야옹, 야옹, 꿀,꿀,꿀, 멍, 멍,깜빡,깜빡거울을 보고 계속끝을 향해 달려가는모두의 세탁기 돌림아파트는 거울의 세탁기였다깜빡거리는 깔라만시모두의 발을 붙잡아요절벽의 끝절벽의 시작식물들은 모두 담쟁이 되어길을 열었고동물들과 사람들은 모두 거울을 깨려 집에 있는 세탁기를 가지고 오네요깜빡, 깜빡계속 움직이는 깔라만시의스탑 or 레디 큐계속 들어가는 깔라만시모두 돌려요눅눅한 붕어빵처럼 될 때까지모두 들어갔나?계속 복사되는 깔라만시개굴, 개굴, 야옹몇의 음이 멈추고사분면의 연장은 원점으로 가게 되었다깔라만시의 돌림과 사람들의 돌림은 끝아파트가 녹고있다깔라만시의 흐름이 멈춤으로멀리서 들려오는 사분면찢어졌다깔라만시에 젖어 눅눅한 붕어빵이 되었다찢어진 아파트는 결국 녹아모든 것의 붉은 꽃이 되어다시 흔들어져요거울의 복사는 원점에서 끝나다시 세탁기를 돌려요
작성일 2024-05-14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94상세보기 -
시 벡터씨 이야기월장원 선정
벡터씨는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 오직 직진만이 그의 유일한 방향인 것이다. 간혹 좌우의 풍경이 궁금해지면 눈동자만 힐끔힐끔 굴려대는게 그가 세상을 탐험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걸으면서 항상 까만 우산을 들고다녔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가와도 펼치는 일은 없었다.벡터씨는 한없이 걸었다. 눈이 와도 걸었고 자면서도 걸었다. 심지어 거대한 뱀이 그를 삼켰을 때도 그는 뱀의 창자를 걸어나왔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그는 바다 한 가운데를 걷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늘은 이곳저곳 솜털을 모으더니 서로 부딪혀 먹구름을 울려버렸다. "나는 시련을 수없이 횡단한 사람이지. 이런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먹구름의 눈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가 중심에 다다르자 무거운 천둥 소리와 함께 눈앞에 순백의 깃털이 휘날렸다.벡터씨가 정신을 차린 것은 외딴섬 모래밭이었다. 오른손에는 제멋대로 휘어진 우산창이 남아있었다. 벡터씨는 화가났다. "10년 동안 걸음을 멈춘 적은 없었는데!" 그는 앙상한 창살을 뜯더니 마구잡이로 던졌다. 창살은 제각기 하나의 점이 되어 모래밭에 박혔다.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는데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다 금방 쓰러져버리곤 했다. 30분이 지나자 그는 일어서기를 포기하고 모래밭에 누웠다. 하늘이 파랬다.눈동자에 주황빛이 비쳐오자 그는 주름 가득 웃으며 일어섰다. 이제는 제대로 걸을 수 있었고 자유를 느끼며 곡선의 자취를 남겼다................그는 세상이 둥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성일 2024-05-14 작성자 식빵연필 좋아요 3 댓글수 0 조회수 375상세보기 -
시 세상 끝에서는 거울이 마른다월장원 선정
한 남자가 나에게 와 말했다"거울이 마르는 거 본 적 있어?"거울이 마르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아뇨 거울이 저수지도 아니고 어떻게 말라요?"그러자 남자는 자신이 간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며거울이 마르는 법에 대해서 말해주었다남자는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서 끝없이 걸었다언젠가 도착하고 싶은 그 세상의 끝을 향해그는 걷고 또 걸었다다리가 저려도 걷고 다리로 못 걸을 거 같으면팔로 걸으면서 쉼 없이 끝없이 계속 걸었다그렇게 끝없이 걷자 그는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하지만 세상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 어떤 사람도 어떤 식물 어떤 짐승도어떤 건물도 어떤 사물도 어떠한 구름도저 지평선 안으로는 없었다남자는 이렇게 열심히 왔지만 아무것도 없자실망하며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거울을 꺼내 들었다하지만 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마치 평소 세상을 비추전 저수지가 마른 것처럼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고그때 남자는 깨달았다고 한다자신이 무엇을 이토록 끝없이 찾았는지이 말을 한 남자는 곧바로 가보겠다고 하고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성일 2024-04-11 작성자 바리스타작가 좋아요 1 댓글수 0 조회수 599상세보기 -
시 사우론의 눈월장원 선정
사우론의 눈경수는 미나를 본다 미나는 은우를 본다 은우는 진수를 본다 진수는 현규를 본다 현규는 동하를 본다 동하는 진주를 본다 진주는 진수를 본다 진수는 대준을 본다 대준은 민지를 본다 민지는 준수를 본다에어포스원 조던 반스 아디다스 나이키 리북 뉴발란스 컨버스 퓨마 크록스 자라 유니클로 폴로 나이키 톰브라운 스톤아일랜드 스투시 아디다스 언더아머 아미 꼼데 샤넬 루이비통 노스페이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본다 죽을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
작성일 2024-04-11 작성자 김백석 좋아요 2 댓글수 0 조회수 452상세보기 -
감성&비평 그냥, 사람은 그냥, 사랑으로부터 -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월장원 선정
나는 ‘사랑’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사람’이란 단어 역시 좋아한다. 꽤나 뜬금없는 말이지만 나는 사랑과 사람이란 단어는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사랑의 받침을 바꾸면 사람이 되고. 사람에서 또 받침을 슬며시 바꾸면 다시 사랑이 되고.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사랑이란 감정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나는 사랑 없이는 성숙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 아직은 성숙한 사람이 아닌 한낱 고등학생인데다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열심히 탐구해 나가는 과정을 밟는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글은 섣부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사랑만 있다면 그냥, 사람이 되기에.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이라는 이 책은 그러한 내게 있어 사랑과 사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더욱 잘 알려주었다.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꽤나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지금은 떠났지만 유독 책에 열정적인 선생님이 있었고 그 선생님과 나는 꽤나 친한 사이였던 것 덕분이었다. 자연스레 선생님의 추천으로 이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에서 조교와 같은 역할을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 책과의 연은 시작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과의 연이 이리 오래 갈 줄은 몰랐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도 보고, 생기부도 채울 수 있겠다는,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아시기라도 하셨는지, 아마 너 이 책을 보면 평생 기억할 걸?, 이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나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앞으로의 내 미래를 다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냥, 사람」에 대해 말하기 앞서, 이 책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홍은전 작가의 삶, 그니까 작가님이 노들야학 (장애인 야간학교)에서 활동하며 쓴 글을 이어붙인 글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장애인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은 적이 없었던 탓에 이 책이 더욱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론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만 다룬 것이 아닌, 홍은전 작가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월호, 젠더, 아이 등 사람에 관한 이야기뿐만이 아닌 동물의 문제들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지만. 나는 장애인이라는 그냥,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글을 전개해 나가고 싶다. 1. 장애인이라는 이름의 사람. 일단 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나의 할아버지가 장애인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선천적 장애인이 아닌 후천적 장애인. 장애를 얻게 된 사정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할아버지가 나와 비슷한 나이였던 그 시절, 일본 군인에게 총을 맞아 거동이 불편하게 되셨다는 것도, 거동이 불편한 탓에 걸으시다 그만 크게 넘어져 장애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도. 꽤나도 아닌 많이 어두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그러한 사정과는 달리 밝은 사람이었다. 늘 산책하시는 걸 좋아하여 매일같이 할머니가 끌어주는 휠체어를 탔고, 카페에 가 언니와 내게 줄 과자를 구경하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전동 휠체어를 탄 이후에는 할머니 없이 혼
작성일 2024-04-11 작성자 난바다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4상세보기 -
소설월장원 선정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불은 켜지지 않을 거야
*(1)층계참은 차갑기만 하다. 항상 그랬지만.센서등이 켜질까 조마조마한 건 아직도 그렇다. 이젠 불이 켜진다고 해도 맞거나 하진 않지만.조금 어렸을 때는 궁금했었다. 혹시 저 불빛은 내 생각이라도 읽는 걸까. 분명 몸을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환해지던 문가. 그와 동시에 날아오던 책. 볼펜. 마우스. 크고 아프고 많은 뭔가들. 그때만 유난히 일관되었던 감정선. 나한테 온 몸으로 보내던 축객령. 이 짓거리도 이제 육년째다.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들은 자장가랑 다를 바도 없다. 아마 내가 아는 유일한 자장가가 혀 아래에서 뾰족하게 튕겨오는 억센소리밖에 없어서겠지. 기억나는 부분을 불러볼 수도 있다. 이놈, 애새끼, 시발, 개새끼. 가끔은 안무도 있었고 그때 그사람 입에선 어김없이 단내가 났었지.어쨌거나 내가 탈 엘리베이터는 아니다. 내 몸은 항상 땅바닥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으니까. 무기력하게. 비참하게. 구차하게. 어렸을 때 한번쯤은 그 속에서 천사가 나와 나를 구원해주는 상상을 해봤던 것 같다.몸은 분명히 컸는데 닫힌 현관문의 크기는 똑같다. 똑같은 크기의 절망. 똑같은 크기의 단호함.구역질이 난다. 그사람도 내가 자기 지갑 속에 놓여 있던 빳빳한 오만원 두 장과 잔돈 천 오백원을 도둑질하지 않았단 거 쯤은 알 거다. 애초에 그런 뻔한 짓을 왜 해?그냥 이유를 찾고 싶었던 거겠지. 인생을 송두리채 가져가 버린 도둑놈을 세상에서 없애고 싶었던 거겠지, 점차 작아지고 투명해져서 결국 센서등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무의식이였겠지, 막연한 생각이지만.사실 센서등의 불이 켜진다는 게 곧 살아있는 걸 의미한다니, 그만큼 웃긴 소리도 없다.어쨌든 죽은 사람을 그 아래다 가져다 놓으면 불이 켜지진 않겠지만.눈 앞이 뿌얘져 온다.*(2)꿈 속의 나는 혼자 집에 있어. 혼자 집에서 빵 봉지를 뜯고 있어. 보들보들 부들부들 맛있는 빵. 뜯기는 어렵지만 맛있는 빵. 어디서 가져왔더라? 아무래도 상관없지. 빵 먹어야 응? 엄마 올 시간이다.나는 엄마를 마중하러 엘리베이터로 나가.기다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 기다리면 엘리베이터에서는 엄마가 내리겠지. 음음, 음. 내리겠지. 엄마가 오면 엄마를 꼭 안아줄 거야.엄마가오면오면오면..와! 엄마가 나와. 엄마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어. 엄마가 웃으니까 세상이 따라 웃어. 아마 나한테는 엄마가 세상이니까 그렇겠지.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들어가. 집, 집, 집. 혼자 있을 땐 슬펐는데 이젠 안 그래. 엄마가 있으니까.밤이 되니까 우리는 다시 집 밖으로 나와. 어? 빵이다. 아까 미처 못 뜯었던 빵이 신발장 앞에 있어. 엄마한테 뜯어달라고 해야겠어.마트로 가는 걸까? 아님 놀이터에? 사실 어디로 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엄마랑 있으니까. 난, 엄마랑 있어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해.조금 기다리니까 엘리베이터가 와. 행복해.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같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행복해. 엄마 눈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구부러졌어.이제 엘리
작성일 2024-03-19 작성자 강완 좋아요 3 댓글수 0 조회수 711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