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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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자라요, 언제나요.
권여름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나는 장편소설 초고를 쥐고 있어야 했다. 지난겨울, 내게는 새로운 이야기의 처음, 중간, 끝이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처음 몇 줄을 썼다. 시작이 반이니 이미 절반을 쓴 것 아니겠냐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고 다녔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느 정도 진심이 묻어 있었다. 이번에는 어쩐지 그전보다는 빠르게 장편소설 한 편을 뚝딱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편소설을 쓰는 데 장애물이 없겠냐만, 무엇을 만나더라도 씩씩하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일렁였다. 막 두 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고무된 소설가의 자기효능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더욱이 내게는 겨울 방학이 있지 않은가. 성긴 시놉시스를 촘촘하게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초고를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출간 직후 크고 작은 일정도 서서히 마무리되면서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으니 타이밍이 좋았다. 온 우주가 나의 세 번째 장편소설을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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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송희두 필적 감정소에서
작가소개 / 권여름 2021년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가 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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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삽목
삽목 권여름 간병 바통을 엄마에게 넘기기로 한 전날 밤,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뜻밖의 소식이었다. - 안녕하세요. 어진 쌤 제자 김윤하입니다. 쌤이 전달해 달라는 게 있어 연락드려요. 어둠 속에서 얼굴로 쏟아지는 휴대폰 불빛에 미간을 찌푸리며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어진 언니의 이름에 쌤, 이라는 단어가 붙는 게 어색했다. 누구를 가르칠 만한 재목이 못 됐다. 그게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김윤하는 병원 로비까지 찾아왔다. 내게 문자를 보낸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대학 과잠을 입은 김윤하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멀리서부터 꾸벅 인사를 했다. 긴 생머리가 흐트러졌다가 모였다. 어진 언니를 쌤이라 부르는 애는 대체 어떤 애일까. 어젯밤 머릿속에는 가상의 얼굴들이 떠다녔다. 대면한 김윤하는 상상 속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병원 로비를 둘러보던 김윤하는 놀란 표정이었다. “여기 사람 진짜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