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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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죽은 새
죽은 새 김근 죽은 새는 죽은 새였네 고양이의 눈 단추처럼 빛났네 단추를 떼어내도 죽은 바람은 죽은 바람이었네 고개 늘어뜨리고 활짝 펴진 채 굳은 날개 고양이 눈 멀었으나 갈수록 늘어갔네 피가 돌지 않는 책장들 다 묻을 수도 없었네 새를 들어 담뱃재를 떨었네 뜨거워지지 않았네 식은 통조림만이 고양이와 나의 몫이네 새는 새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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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대낮
대낮 김근 환한, 환한 대낮에 너는 나를 때린다 길이 제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너는 사라지고 나는 금세 이완된다 내 몸을 이루던 성벽들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린다 너 없는 풍경들 선명하게 다 삭은 몸의 단면들마다 인화되고 온전히 아스팔트는 되지 못하고 다만 흐려진 눈이 아스팔트의 어둠을 조금씩 베끼는 사이 조심스러운 무릎들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닌다 바람이 허리께에서 진저리를 친다 심하게 지린내가 진동한다 언제 이 몸을 다 맞추나 이런, 대낮 개구리떼처럼 햇빛이 흩어진 몸을 뒤덮는다 저만치서 얼얼한 악관절이 조용히 덜그럭거린다 핏기 없는 하늘 겨우 웃음의 한쪽 입꼬리 파르르 떨린다 언제든 모르는 너는 모르는 나를 때려눕힌다 대낮, 너는 아예 없었다는 듯이 환한, 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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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김근 비 내린다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싱싱한 뼈마디 철그럭거리며 할아비들 온밤 내내 여기에 도착한다 초록재 주홍재로 흩어지지 못하는 할미들 다만 낡는다 낡아 삭는다 원삼 족두리 간 데 없고 할아비들 일제히 총구를 들이댄다 헤진 군복 소매에서 기어 나온 강아지풀 총구 끝에서 녹슨다 녹슬어 툭툭 떨어져 내린다 비로소 텅 빈다 할아비들 치맛자락 펼쳐 할미들 꿈틀거리는 강아지풀 다 받아내는데 너무 많이 도착하는 할아비들 첨벙첨벙 군홧발소리 흩어진다 옷자락 잘라버리고 온밤 내내 할아비들 또 너무 많이 사라진다 할미들 몸에선 강아지풀 번데기로 굳고 어느새 시커멓게 파리 떼 날아다니고 성가시고 허구한 밤, 비 내린다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싱싱한 뼈마디 철그럭거리며 할아비들 온밤 내내 여기에 도착한다 초록재 주홍재로 흩어지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