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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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내 청춘의 북국(北國)
내 청춘의 북국(北國) 김남일 왜 그랬을까.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청년은 그런 풍경과 맞닥뜨리면 기다렸다는 듯 가슴이 비릿해지고 때로는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것이었다. 가령 난로 위에서는 마슬로바가 끓으며 하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는데 창밖으로는 어느새 펑펑 함박눈이 내려 가깝고 먼 하늘을 지울 때라든지, 시작도 끝도 없이 너른 자작나무 숲 위로 시작도 끝도 없이 눈발이 분분하여 분별의 눈마저 지울 때, 이윽고 눈은 쌓여 무릎까지 빠지는 무더기눈밭 저 까마득한 지평선 위에 까만 물상 하나가 나타났을 때. 청년은 아마 어린 시절 단체로 관람했던 영화의 충격이 너무 컸는지 모른다. <닥터 지바고>. 불온한 기운이 감도는 혁명 전야의 모스크바. 그 얼어붙은 거리에 울려 퍼지는 한 발의 총소리. 운명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다. 지레 흥분한 기마(騎馬)들이 히힝거리며 내뿜던 숨결마저 하얗게 얼어붙는데, 저만큼 거리 끝에 서서히 유령처럼 나타나는 붉은 깃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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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도덕의 구조_제5회
김남일 왈, 전 김사입니다. 아니 왜 김을 사래. 유상철은 난 유사다. 유사제품이냐? 그랬더니 안정환이 똥 씹은 얼굴로 전 안사예요. 뭘 안 사 안 사기는.” 더 듣지 않아도 뻔했다. “그럼 차두리는 차사? 카 레이서 시키면 되겠네. 이름도 박지성이 젤 낫네. 그래도 박사잖아.” 뭐가 그리 웃긴지 미진이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같이 웃지 못했다. 복귀한 뒤로 팀원들은 웃는데 엉거주춤 끼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회식을 몇 번 빠진 탓이었다. 그래서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머! 선배님.” 미진이 비명소리와 함께 황급히 크리넥스를 찾아 건넸다. “왜? 커피 흘렸어?” “예, 아뇨. 코피! 코피 난다구요.” 그제야 인중 부근에 뜨뜻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코피 정도에 웬 호들갑이야. 나가서 일 봐. 커피, 고마워.” 그녀는 무심한 듯 휴지로 코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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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망
망 김남일 벌레 한 마리가 망을 향해 나아갔다. 벌레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쉬지 않고 더듬이를 움직였다. 벌레들은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 망의 의지와 관용과 능력을 시험했다. 그 과정에서 망이 그러했듯 벌레들끼리 서로 연합하고 동맹을 맺고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때로는 변종과 이단, 그리고 무성 증식에 의한 클론과 라멧을 만들어 망을 노리기도 했다. 지금, 망은 피곤했다. 차라리 거대한 벌레 동맹이나 돌연변이 변종의 색다른 호기심이라면 망 또한 호기심을 갖고 대처할 의향이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뻔히 보이는 이런 따위의 벌레라니! 이제 갓 책보를 메기 시작한 유치원생 수준의 더듬이를 달고서도 마치 엄청난 소명을 지닌 듯 당당하게 대로로 다가오는 벌레! 망은 이런 종류의 단독자 벌레에 대해서는 방화벽을 발동시킬 의욕도 일지 않았지만, 어쨌든 길 잃은 애벌레의 접근조차 차단할 의무가 있었다. 망은 그렇게 했다. 벌레는 망의 입구에서 단칼에 제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