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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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바다가 토미한테 오지 않으니 토미가 바다로 가는 거로군, 어떻습니까
* 안토니오 타부기, 『인도 야상곡』에서 부고 눈싸움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사람이 말했다 곧 봄이 올 것이다, 눈사람은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처럼 * 우아하게 내가 가장 추웠거나 뜨거웠던 날의 기억들을 가만히 식탁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꽃들이 국밥 먹으러 오길 기다릴 것이다 * 우밍이, 소설 제목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처럼」에서 차용 작가소개 / 김륭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3년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2014년 제9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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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뱀의 형식
뱀의 형식 김륭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늘고 긴 손가락을 그림자 밑으로 집어넣은 애인은 꼬리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빈병처럼 쓰러진 내 몸 속으로 구불구불 흘러드는 길을 휘돌아 나는 머리, 내가 아닌 모든 당신은 꼬리, 네 개의 발을 잘라낸 우리는 가끔씩 피 흘리는 법을 잊어버린다는 소문을 지나 이미 죽은 자의 목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 보렴. 누군가는 칼이라고 했지만 꿈틀, 우리는 서로가 숨긴 뱀을 꺼내 들고 사랑을 속삭이지. 길이 30-40cm에 굵기 2-3cm 축 늘어진 목구멍 가득 울음을 밀어 넣는 오늘은 밥 대신 살을 먹고 살던 시절의 후렴구다 뼈다귀탕 먹으러 가자. 우린 지금 너무 인간적이잖아. 팬티를 줍던 애인이 다시 뜨거워진다 슬그머니 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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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포옹
포옹 김륭 돼지는 문밖에 나와 있었다. 삼겹살집을 나서는 그녀가 아휴, 냄새 잔뜩 인상을 찌푸리기 전부터 돼지는 킬킬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던 입술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기 전부터 변기 위에 앉아 서둘러 넥타이를 풀고 몸밖에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돼지는 몸을 식탁이 아니라 침대에 바쳤다. 갈고리 맞은 잠과 잠에서 발라낼 수 없는 꿈의 간곡한 체위를 위해 혈맹을 다짐하는 돼지, 몸을 연애에 바친 눈빛은 길 건너 은행나무 밑동을 흔들어놓을 만큼 집요하고 꿉꿉하다. 킁킁 코를 지우는 그녀가 마침내 살을 버리고 꽃이 될 때까지 이쑤시개 하나로 달을 피워 문다. 길가에 버려진 베고니아화분처럼 붉게 타오르지 않는 그림자가 마른 구덩이 하나로 움푹 꺼지는 시간의 비탈, 내가 그녀에게 바쳤던 키스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입만 살아 불편했던 부족들의 부장품이 되어 달콤해진 골목의 무릎을 다치게 하고 돼지는 나보다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