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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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첫 시집 발간 시인들과 함께
김명철 시인은 거부하실지 모르지만 『짧게, 카운터펀치』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의 시를 보면, 시 한 편에 드러난 이미지가 다양하고 현란할 때조차 확연히 드러날 정도의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김명철 : 제 시를 읽은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듣는 칭찬이 시가 좋다는 말보다 문장이 정확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문장가가 아니라, 그 축에도 못 들지만, 좋은 시인이고 싶습니다.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웃음) ▶ 배영옥 : 저도 김명철 선생님처럼 늦은 나이에 시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서른두 살 즈음에 지인을 따라간 곳이 시를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잠시 직장생활을 쉬고 있을 때였지요. 일주일에 한 번 시에 대해 강의를 들었어요. 일 년은 그냥 듣는 것이 전부였는데 2년째부터 시를 써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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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악어
악어 김명철 시외버스 터미널 뒤편 듬성한 소나무 숲, 내장 하나 없이 가죽만 남은 악어 한 마리가 앞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 일어선다. 녹슨 철제 더미 풀숲에서 얼어붙었던 입을 쩍 벌린다. 금 갈듯 탱탱한 악어의 눈동자에 송곳 같은 눈발이 꽂혀도 입 벌린 채 미동도 없다. 어린 누 한 마리쯤 통째로 삼키던 아래턱의 기억이 눈뭉치 뒤덮인 솔잎에 촘촘히 걸린다. 송곳니와 송곳니 사이에서 무뎌진 야성이 떨고 있다. 기아로부터의 탈출과 아마존의 쥐라기 같은 열대 남미 혁명을 등짝에 가파르게 질러진 몇 줄기 빙곡(氷谷)으로 한껏 입을 벌리고 악어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내 뒷걸음질에 악어의 황갈색 동공이 가늘게 찢어진다. 지상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카니발 축제 소리가 악어의 꼬리를 풀숲 속으로 끌어가고 내 품속 무늬만 선명한 악어가 날리는 눈발 속에서 위턱을 살짝 들었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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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숨
숨 김명철 너에게서 푸른 저녁과 고요가 빠져나간다 뜨거운 몸과 차가운 몸이 나란히 눕는다 너의 눈이 나의 눈을 힘없이 바라본다 땀방울이 너의 이마에서 나의 이마로 흐른다 뜨거운 눈동자가 차가운 눈동자 속으로 들어와 난파한다 모자와 장갑을 벗었고 맨발이야, 그래도 도망치지 마 축축한 것이 기웃거리네 싸우지 않을래, 그래도 따라가지 마 뿌리치지 못해 난 갈래, 눈길도 돌리지 마 내 가슴이 너의 가슴으로 들어간다 돌탑이 성큼성큼 해안 절벽으로 향하고 절벽은 망설임 없이 허리를 꺾는다 네가 기르던 한 마리 흰 물새 쉴 곳이 없다 나의 숨은 너에게로 넘어가고 너의 숨은 내 귓속에서 깃털처럼 흩어지고 나와 너의 발가락뼈끼리 머리카락끼리 서로 섞인다 섞인 호흡이 속도를 놓치는 사이 온몸과 마음은 소용돌이 속으로 추락한다 나의 가슴이 세로로 너의 가슴이 가로로 찢어진다 흰 물새처럼 날개가 부서지는 밤 내 안의 네가 삼삼오오 다 빠져나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