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white bush
white bush 김연덕 죽은 듯이 잠자고 깨어난 아침 나는 차가운 연기 속수무책 영토를 넓히는 얼룩들처럼 살아 움직이는 나를 보았다 계단에서 마당에서 처음 보는 현관 앞에서 기도하고 체조하며 어지럽게 얼어붙은 첫 공기와 서성이던 나는 나를 감싸고 보호하던 기름진 빛이 늦은 창피 한 겹이 사라졌구나 나 오늘부터 내가 살아 보지 못한 몸으로 살게 됐구나 지대가 높은 구조가 아름다운 이 저택에서 낙엽들로 부산스럽던 지붕 아래서 우기다 눈물 흘리다 갑작스레 쫓겨날 때까지 지친 뿌리 마당 곳곳 파고드는 몸집으로 잠들기까지 긴긴 세월 대저택을 사랑하던 자 벽과 가벽 사이에서 허둥대던 자를 위한 새 이파리 새 현실이 주어졌구나 생활기도도 체조도 잘 되는구나 깨달았는데 우기던 계단과 창백하게 변색된 이파리 어제까지 오르내리던 얼굴은 대낮에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죽은 듯이 다시 잠에 빠져들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을 위해 너무 많은 상상력을 사용해 왔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재와 사랑의 미래
재와 사랑의 미래 김연덕 구멍 난 빛 축소된 세계가 마주 선 유리만큼 견고해 보존액의 무심함 세세하고 아름다운 수식 같은 상처로 무섭게 쪼그라들 나의 뇌는 근현대관 한가운데 전시될 것이다 도시는 숨긴다 바삐 뛰며 규격대로 배워 온 언어 최대한의 최소한의 팽창의 시간 꿈 없이 새로 부서지는 커다란 어깨 해 지는 거실 비스듬히 세워 둔 키 큰 식물이 흐르는 빛 잃어버린 정신에 집중하듯 조금씩 기울어지면 나는 불타는 도로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지금으로부터 칠십 년 전 나의 할머니가 아내 앞으로 남긴 편지를 읽네 버석거리는 너무 많은 꽃들로 뒤덮인 아내의 이마 실밥 풀린 아내의 소매와 밑단이 흙속에서 어둡게 움직일 만큼 지친 리듬 평평한 잠에 빠져들 만큼 서정적이고 고전적인 문장들로 조합된 편지 느리고 차가운 환하고 사나운 시간처럼 스며드는 도로의 난폭함과 열기를 전등 삼아 나는 아내 대신 기나긴 답장을 쓰네 사람들은 이제 조명이나 조각난 영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