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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생존 게임의 서글픈 레짐
[문학리뷰(소설)] 생존 게임의 서글픈 레짐 - 최유안, 「거짓말」/ 장강명, 「대기 발령」/ 김유담, 「이완의 자세」 김영삼 1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생존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과 사건들을 목도해 왔다. 그 참혹한 서사의 리얼리티가 위협적인 이유는 생명정치 관리 시스템의 파열음들이 현 세계의 풍경과 구조에 앞으로도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생명정치는 곳곳에서 실패의 신음을 생산하고 있다. 계급, 세대, 지역, 인종, 젠더 등의 뇌관을 건드리면서 작동하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그 증거다. 또한 결혼, 출산, 육아, 취업 등 생의 과정 곳곳에 놓인 높은 문턱은 개인들을 생존과 경쟁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내몰고 있다. 주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경계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에서 생산되는 기호들이 곧 현시대 우리 삶의 아비투스이며 기표이며 서글픈 레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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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돌보는 마음
작가소개 / 김유담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밀양에서 성장했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핀 캐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탬버린』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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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상속
상속 김유담 너는 길 건너편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냥 건너오라는 손짓을 해도 너는 꼿꼿이 서서 녹색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유령이 저렇게까지 교통법규를 철저하게 지킬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건너편에서 우르르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너는 단연 눈에 띄었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 네 모습이 마치 런웨이를 걷는 모델 같았다. 나는 미니스커트에 가죽 코트를 걸쳐 입고 부츠를 신은 네 모습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법정에 가는 옷차림치고는 좀 요란하다 싶기도 했다. 오늘 같은 날은 최대한 후줄근하게 입는 게 낫지 않나, 혼자 생각에 잠겼다가 너는 옷차림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아차차 하고 깨닫는다. “안 늦었지? 강남은 올 때마다 복잡하고, 사람이 많아서 긴장돼.” 원래 키가 큰 편인 데다 굽 높은 부츠까지 신은 네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