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얼굴의 물성
얼굴의 물성 김지연 정말 사람 같아 잠든 개의 얼굴을 보던 우리 중 하나가 말했다 모두가 창밖 공작새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 공작새는 끼요끼요 기괴한 목소리로 운다 사람들은 이것이 이 아름다운 순간을 부서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여기 똑같아 말하는 세 살의 작고 말캉한 새끼손가락은 인중에 꼭 들어맞고 우리의 얼굴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닮는다 깜지는 왜 인중 없어?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재세계
재세계(reworlding) 김지연 지나간 일은 다 잊자 지나간 일은 다 잊는 거야 그는 이 대사의 다음 장면에서 죽었다 영화 속에서 영화는 계속될 것 같았고 그 사람은 영원히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영원히 잊게 될 것이다 핸드폰 불빛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어 극장에 꽉 들어찬 어둠은 그 작은 불빛 하나 숨겨 주지 못하고 주인공은 십이월 밤거리의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것도 알아보지 못한다 오래된 거리를 걸으면 가로수들은 영원히 자랄 것 같다 정원수의 손에서 떨어지는 잎사귀와 뚝뚝 분질러지는 나뭇가지의 미래를, 잔디가 깎이는 동안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통을 다 기억하면서 십이월은 어디에서나 커다란 나무에 작은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불빛이 들어오고 빛을 끄고 불을 켜면 다 똑같아 보이는 세계의 근원은 이제 전기라고 인간은 빛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원하는 만큼의 빛을 만들 수 있다 운전자가 죽은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8 올해의 소설
김지연, 「작정기」, 《문학동네》, 2018 가을 [caption id="attachment_143242" align="aligncenter" width="300"] 김지연, 「작정기」,《문학동네》, 96호(2018 가을)[/caption] 원진을 향한 '나'의 마음은 사랑이고 '나'를 향한 원진의 마음은 우정이다. 이런 마음들은 서로 오갈 수 없어 서로 아프다. 「작정기」는 몰라주니 고맙다가도 때로는 미웠기에 나중에는 그립다가도 자책하게 된 '나'의 마음은 드러내 보여주고,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받을 수 없었기에 조심스레 돌려주고 싶었을 원진의 마음은 감추어 짐작게 한다. 쓴 걸 쓴 만큼 읽게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안 쓴 것까지 기어이 읽게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