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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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탁자에 대한 사랑
탁자에 대한 사랑 박승열 나는 그 방에 있는 탁자를 사랑한다 그 탁자를 다른 방에 둔다면 다른 탁자가 될 것이다 같은 크기의 모서리, 같은 곳에 난 흠집, 같은 굵기의 다리들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의 탁자는 다른 탁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방에 있는 탁자를 사랑하고 탁자는 그 방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에 있더라도 탁자는 다른 탁자가 될 수 있다 탁자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갔다고 해보자 그때 그것은 전혀 다른 탁자다 그 탁자는 처음 왔을 때 비어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그 탁자는 끝까지 빈 채로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위에 음식들을 올려 두고 사람들을 초대한다면,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탁자 주변을 오가면서 그 탁자를 식탁이라 불러댈 것이다 만약 그 위에 사람 한 명을 올려놓고 메스를 들어 배를 가르는 의사가 있다면 수술 참관인들은 그 탁자를 수술대라 불러댈 것이다 그러니 그 탁자 위로 고양이 한 마리, 쥐 한 마리, 날파리 한 마리도 올라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탁자를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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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허리케인 비너스
날파리 꼬여서 기분 잡쳤다.” 진주도 교복 치마를 탁탁 털며 가방을 둘러멨다. 나를 투명 인간처럼 굴기로 했는지 둘은 웃으며 내 옆을 살짝 비켜 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윤선이가 뒤돌아 왔다. 내 앞에 바짝 다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 엄마가 하도 너랑 친하게 지내라고 해서 그럴까 했는데 완전 맘 접었다. 이번 시험 떡쳤다며? 수고했다. 그러고 말이야. 너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말이야, 넌 네가 우리랑 엄청 다르다고 생각하지? 아니거든! 너도 우리랑 똑같거덩!” 이번 시험 한 번 망쳤다고 자기들이랑 똑같이 취급하다니. 모욕적이었다. 그런데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네가 다르다는 걸 보여 줘.’ 목소리만 내 목구멍에 가득 차오를 뿐이었다. 학원 담임인 수호가 내 성적표를 보면서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적어도 수학만큼은 백 점을 맞아야지. 구십사 점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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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알파벅스
나비나 꿀벌 등의 익충은 제외하고 바퀴벌레, 파리,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귀와 입으로 날아드는 날파리 등이 알파벅스의 주된 사냥감이다. 정밀하게 제작된 레이더 센서와 음파 감지기를 통해 해충의 생체반응을 감지하고 주변에 사냥감이 될 만한 해충이 없으면 스스로 땅에 묻혀 전원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아직은 감지망의 범위가 넓지는 않지만 이 산의 규모로 미루어 보자면 보름 안에 모든 해충을 박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은 거침없이 알파벅스에 관해 설명했고 마을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대부분의 단어를 건너뛴 채 정에게 질문했다. “보름? 그렇게 빨라?” 강은 정을 대신해 대답했다. “아 그렇다니까요. 물만 있다고 손님 오나요? 꽃도 피고 해야지. 그러려면 나비나 벌은 있어야 하고.” “그건 그렇지.” “약 뿌리면 걔네까지 싹 죽어요. 풀도 죽고. 그거는 좀 너무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