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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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담
담 임경섭 마카는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어 발기부전, 불임, 갱년기 장애를 품고 마카가 도심 한복판을 떠돈다는 사실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야 잃어버린 남성의 힘을 되찾아 준다는 마카는 전파이거든 전단지로나 끼여 오던 것이 이제는 날개를 달고 공중을 배회하거든 나는 떠들썩한 적막들을 데리고 레인보우 모텔 너머로 날아갈 거야 우리의 음절이 허공을 발음하기 시작했거든 모두가 지닌 유리창마다 하루살이처럼 덕지덕지 유언들이 달라붙기 시작했거든 그리하여 지친 무지개는 간판처럼 빛나야 했거든 고귀한 성조들은 뭉텅이로 날아다니기 시작했어 인쇄되지 못한 노래는 역사가 되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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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훈장 (2) 딸년
나무 그늘지고 어두컴컴한 교회 담 밑에서 뭔가가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도둑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어줍잖고 도둑인가 하여 사내는 바짝 긴장해 손전등 불을 죽이고 주차된 차들 틈새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곧 어둠에 눈이 익고 움직이는 게 여자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챘다. 여자가 야밤에 저 어두운 데서 무얼 하고 있는가 궁금해 사내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몰래 쓰레기라도 내다버리는 경우라면 재빨리 손전등을 켜고 현장을 급습할 요량이었다. 여자는 교회 담 밑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골라 주워 나르고 있었다. 교회 담 밑에서 주워 올 거라곤 담 공사할 때 쓰고 남은 자갈들이나 벽돌뿐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단을 꾸민다고 더러 집어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그런 걸 집어 나르는 거라면 도와줄 생각으로 사내는 손전등을 켜주려다 말고 멈칫했다. 발소리를 죽여 교회 담 밑으로 슬그머니 다가선 여자가 교회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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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늪
늪 김태경 저 연꽃들 연못 위에 핀 형형색색의 손짓이거든 지키려고 탈출을 멈춰 서던 중이었다 정제된 춤 동선이 어그러지면 안 되지 까만 별은 검은 빗방울 속에서도 빛나야 해 투명해진 작은 말이 파란 문을 되뇌는 동안 소리 없는 외침에 이끌린 건 꽃이 있어서 유일한 길목일 거야 담 밖 아닌 담 안에서 수면을 지나가면 연못 안에 공터가 있다 벽 없는 그곳에서 당신이 웅크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혼자 있었나요 눈웃음에 가려진 침묵의 푸른 눈물 스침은 베고 찌르듯 밝아서 눈부시고 말의 몸이 푸르게 변해 떨어진 비에 아프거나 당신의 눈물샘부터 투명해져 사라지거나··· 연못에 빨려 들어가도 흔적 없거든 출구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