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7)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초대하지 않은 자
초대하지 않은 자 함기석 한 동사가 간다 당신이 지금 입은 그 옷을 입고 당신이 지금 기른 그 머리를 하고 한 자동사가 간다 당신 얼굴과 똑같은 얼굴이 달린 당신 가슴과 똑같은 가슴이 달린 한 탈옥수가 간다 붉은 감옥 붉은 철조망에 눈이 긁힌 사형수가 목적어를 제거할 목적으로 목적지 문장을 향해 복면한 주어가 되어 간다 그는 지금 핏물이 흐르는 얼굴로 당신의 방, 문 뒤에 칼을 들고 서 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미귀
철제선로 놓이고 자갈을 쳐 한 삽 끼얹고 화─ 그일 가등으로 세워 놓고 생각에 잠겼다 살갗으로 유리 닦으면 빛 멎고 못내 잊은 것 크나이다 한달음 시각을 추월한 별빛 추수 모르는 빈 대궁을 수수꽃 흩은 여인네 잔영으로 나 그때 모른다는 위증으로 여즉 떠나보내지 아니한 것 아니지만 분명코 너른 땅 나린 그해 눈 때문입니다 풀린 시간의 낙차여 나긋한 손길로 편물 편 여자가 연착 없는 밤 내 모습에 맞아 순환선 무늬가 삼등칸에서 완성되고 싶은 밤 보게 될 것 같으다 부산한 도시에도 날아, 밝아라 염려 마라, 나 늦어도 목적지 닿을 쯤 누대의 맹세 곡식단 거두는 대지에 눈사태 나던 마음 멎을 것이다 결국 제 것에 대해 들으려거든 지금은 여름밤이 황도를 통과할 무렵 무정한 흰 빛에 대하여서만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모자 모델하우스
주말 아침부터 급히 상가에 가느라 못 챙긴 밀린 늦잠입니다 때로 방금이고요 가끔 이따가도 됩니다 챙 넓은 모자를 눌러 쓴 난쟁이입니다 당신이 지워버린 원고지의 빈 칸입니다 당신이 버린 봉제 인형입니다 당신이 휴가 때 버린 유기견입니다 언제든 찾아와 충전기를 꽂고 무기한 쉬어가도 좋을 버스터미널 공용 콘센트입니다 그러나 방전되기 전에 오세요 길고양이 한 마리도 개미 한 마리도 그냥 보내지는 않을게요 단 당신이 살아 있어야만 올 수 있어요 모자를 눌러 쓴 채 온종일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려요 묘지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보부상 아니냐고요 내 머리 위 모자 속이 궁금하신가요 비밀 보따리 속에 보물이 잔뜩 들어 있냐구요 물론입니다 이따금 고객들은 검은 공단 소재의 불행이 드리운 챙을 주문하거나 희망의 분홍 레이스만을 고집하기도 합니다만 죽음의 상장만은 팔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냐구요 풀옵션 묘지 모델하우스입니다 전방에 근사한 언덕 하나가 보인다고요 목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