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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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밀짚모자와 전정가위, 그리고 호미 강호삼(소설가) 오월의 아침 햇볕이 밝고 따사롭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에 색 바랜 블루진 상의와 회색 몸뻬 바지 차림인 선생님의 가지치기 작업은 아직도 계속 중이다. 호미와 담뱃갑이 든 대바구니는 바닥에 놓여 있다. 손바닥 부위에 빨간색 고무를 입힌 실장갑을 끼고 나무를 올려다보며 전정가위로 곁가지 한 가지를 잘라내고 있다.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이다. 누가 대하소설 『토지』를 쓰신 대작가 박경리 선생님인 줄 알아볼 수 있을까. 잠깐 지치셨는지 당신이 가지치기를 한 나무에 등에 대고 그대로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으신다. 대바구니를 앞으로 끌어당기시더니 담뱃갑을 찾아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무시고 일회용 가스라이터를 눌러서 불을 붙이신다. 이내 푸르스름한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무척이나 무심하고 평화스러운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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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겨운 박정애(소설가) 1994년 여름, 나는 첫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어떤 회사에 다녔다. 몸은 쉽사리 피곤해졌고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기왕에도 몇몇 직장을 때려치운 전력이 있던 나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한 누군가를 떠올렸고, 어쩌면 나 또한 그런 종류의 인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학부 전공을 살려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과정을 밟으려 합니다.” 사표를 제출하며 내가 상사에게 한 말인즉슨 그랬다. 하지만 내가 그해 11월 남산만 한 배를 헐렁한 겨울 코트로 가리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르러 간 곳은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가 아니라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였다. 내가 겪은 가장 더웠던 여름과 가장 반가웠던 가을, 그 몇 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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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선생님, 그곳은 어떻습니까? 조용호 늦게 문단에 나와 당시 단편집은 한 권 묶어냈지만 장편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늘 나를 괴롭혔다. 일간지 기자로 살면서 제대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게 유일한 변명이었다. 단편은 그때만 해도 주말에 회사 앞 여관을 잡아 턱 밑까지 차오른 내압으로 1박 2일 동안 써내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단편과 장편은 다르지 않은가. 열정과 에너지만으로는 단숨에 써낼 수 없는 장르가 장편이다. 단편은 에세이, 장편은 철학에 비유한 글을 본 적 있다. 분명한 자신의 세계관과 인간을 바라보는 튼튼한 안목으로 짜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장편이 나오기 힘들다는 맥락이었을 게다. 하물며 반복적인 밥벌이의 일상 속에서 긴 호흡의 정서가 필요한 장편 쓰기가 용이하겠는가. 애면글면 노심초사하다, 직장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휴직이란 걸 감행했다. 그것도 겨우 6개월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