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밤티재길
밤티재길 박남원 일 없는 날이면 가끔 와 걷는 춘향과 이도령의 밤티고갯길 인적 드문 낡은 아스팔트길 옆으로 오랜 수령의 우람한 육송들 큼지막하고 구불구불한 줄기로 전설처럼 서 있고 벌개미취, 구절초 지천으로 피어 가끔 부는 바람과 함께 넘던 고갯길. 하늘 가린 울창한 나뭇가지들을 지나 길에게 길을 물어 걷다보면 오래 된 말들이 더듬거리며 따라오고 삼년 내내 가뭄 들어 논밭이 타서 살다 살다 못살고 이역 가던 길. 한양 가던 이도령 부여잡던 춘향의 버선발이거나 장돌뱅이 등짐이며 소구루마며 숱하게 울고 웃으며 넘었을 고개. 그리하여 나는 이 고갯길 자주 걸었네. 내 몫의 고독과 내 몫의 슬픔 등짐으로 지고 가면 먼 들녘 어느새 개구리들은 수없이 울어대고 나무들도 숲들도 따라 허이허이 울어대고 행여 이 길 걷다 내처 먼 이역 가더라도 저 낮고 자잘한 풀들의 살림살이 부디 잊지 말라고 부디 잊지는 말아달라고 박새며 풀여치도 함께 넘던 고갯길.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백용성 조사 생가 터
백용성 조사 생가 터 박남원 장수군 번암면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 생가 터에 가서 보았네. 광주에서 주말마다 내려와 번암 고향에 흙집을 짓는다는 지어놓고 나중에 고향에 와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곧 퇴직을 앞둔 나이든 선생네 집 일 거들다가 일 끝내고 오는 길에 가서 보았네. 백리길 마다 않고 달려온 아득한 산줄기 그 마지막 산자락 배산임수 좌청룡 우백호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선생의 탯자리. 햇빛 맑은 날 근처 청둥오리들이 먹이를 먹고 나서 한나절 넉넉하게 놀다간 흔적과 혹, 검은 비바람이 불어 닥치기라도 하면 갑자기 흰 호랑이와 청룡이 불쑥 들고 일어나 맹렬하게 터를 감싸 지켜낼 것 같은 평화롭지만 범상하지 않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