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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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소설 없는 소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소설 없는 소설 이상희 “웃긴 게 뭔지 알아요? 내가 쓴 소설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데 그 ‘아무도’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중간에 그만둬 버리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내가 바틀비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당신 책은 이미 출판되었으니까 내가 거기에 낄 수도 없고요.” 나는 엔리께 빌라 마따스의 책 『바틀비와 바틀비들』을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내 무의식은 내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는 편이라서 『바틀비와 바틀비들』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내 손에 『바틀비와 바틀비들』이 들려 있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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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웹진편(1) - 아는사람, SRS
가장 눈에 띈 점은 시와 소설 텍스트를 개별로 구매해서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료 텍스트 외에도 무료로 볼 수 있는 재미난 콘텐츠들이 연재되고 있어서 반드시 유료 구독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웹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Q. 차현지 작가님, 안녕하세요! 〈느린 기린 큐레이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웹진 인터뷰가 아직 웹으로 문학작품을 읽는 게 익숙하지 않은 독자분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작가님께서 운영하고 계신 웹진 《SRS》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A. 안녕하세요, 문학 웹진 《SRS》(이하 SRS)를 운영하고 있는 큐레이터 차현지입니다. SRS는 말 그대로 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웹페이지입니다. 시, 소설, 그리고 비평과 리뷰 텍스트를 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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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서정아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얼음 도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온몸의 숨구멍을 박음질하듯 날카롭게 내리꽂혔다. 나는 크림색 패딩 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채우고 귀가 덮이는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순식간에 몸 전체를 휘감아 버린 낯선 추위에 상체가 절로 웅크려졌다. 긴 비행시간 내내 얕은 잠에 들었다 깼다 하면서 꿈과 몽상과 잡념 사이에서 오래 헤맸기 때문에, 모처럼 현실 감각이 일깨워지는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수하물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퀴 달린 캐리어를 가져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차가 다니는 도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눈이 잔뜩 쌓여 있었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흰 눈 더미에 깊은 흔적이 남았다. 그런 길 위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는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