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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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생명의 언어 형식-이기인,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 2010)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생명의 언어 형식 이기인,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 2010) 박수연 한 권의 시집은 무수한 생명을 거느린다. 이기인에게 이 말은 그러나 특별한 의미로 적용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시인들의 시편들은, 그것이 자연의 풍경을 노래하거나 인공적 디자인의 기계적인 미를 묘사할 때, 대부분 의미심장한 생명을 환기하게 마련이다. 피어오르는 생명이거나 소멸되는 생명이 그 곳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시적 주체의 언어 내용으로 그렇거나 그 주체가 고안하는 주제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컨대 그것들은 시를 관통하는 시선에 포착된 대상적 사물들과 사건들이다. 그것들은 그러므로 시의 주체가 아니라 수사적 요소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기인은 이 경우가 아니다. 이기인의 시집이 ‘무수한 생명을 거느린다’고 쓸 때, 이 말이 지시하는 것은 주제나 내용으로서의 생명 이전에 그 생명의 언어적 형식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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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총체성보다는 다성성으로서의 장편소설-박형서,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2010)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총체성보다는 다성성으로서의 장편소설 - 박형서,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2010) 이수형 아주 새로운 테제는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다시 호출되기 시작한 장편소설 대망론이 낳은 성과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잡지는 물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문학 매체에 연재되었거나 연재 중인 장편소설의 수효를 따진다면 아무튼 양적으로는 눈에 띌 만한 성장을 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결과 장편소설의 시대가 도래했다거나 혹은 아직 황금기에 이르지는 못했을지언정 장편소설 대망론이 말 그대로 대망했던 완미한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 목도된다거나 하는 식의 낙관적인 진단이나 전망을 하기에는 왠지 자신감이 부족한 형편인 것도 사실인 듯하다. 이렇게 회의론에 빠지다 보니, 장편소설 대망론으로 기대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회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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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어떤 시들은 상처를 요구한다-최치언,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문학과지성사, 2010)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어떤 시들은 상처를 요구한다 - 최치언,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문학과지성사, 2010) 장은정 멍들고 살갗이 찢어져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아이에게 지나가던 한 어른이 다정하게 일러 준다.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면, 신은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 준단다. 그날 밤, 아이는 불 꺼진 교회로 조용히 숨어든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기도는 이것이다. 그들을 모두 죽여 주세요. 아이에게는 살인만이 유일하게 간절한 바람이었으리라. 최치언의 두 번째 시집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는 이러한 최초의 기도를 닮아 있다. 그러니 가까스로 도달하는 화해나 위안이 주는 온기와 같은 것은 이 시집과 거리가 멀다. 이 시들은 아이의 기도처럼 세계의 비참과 폭력에 ‘대응’하고자 한다. 화자는 “발길에 차이면서” “엄마, 제가 죽여드릴게요. 다 죽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