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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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영화칼럼_명작에서 괴작까지] 비틀즈와 안나 카레니나
신념, 신념만으로—조금 더한다면 맷집만으로—믿는 바를 실천할 수 있을까. 주제가 묵직한 것과는 별개로 스타일이 근사했다. 영상의 질감 역시 매우 뛰어난 영화였기에 후속편을 기다리고 있으나 감독이 〈엑스맨〉시리즈를 동시에 맡고 있어서 몇 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올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그 사이에 얼굴이 약간 바뀔 정도로 성장한 애런 존슨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파괴자들(2012)〉에서 또 한 번 독특한 캐릭터를 맡는다. 이 영화를 두고도 감독이 노망이 났네, 졸작이네, 말들이 많지만 나는 굉장히 좋게 봤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캘리포니아 정서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캘리포니아에 가본 적 없어도 캘리포니아의 햇빛, 하늘, 바다, 느낌을 누구나 쉽게 떠올린다. 그게 캘리포니아의 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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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정어리적인 직관, 압둘 키리한적인 표상, 압도하는 푼크툼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는데, 어떤 시적인 신념 같은 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문장 세 개를 이어 붙였는데, 이상하다?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표상 같은 것이 저 스스로 발생하고 있지 않는가! 단순히 이어 붙인 문장의 얼개가 빚어내는 이상한 신비의 표상 말이다. 카프카는 단 세 문장만으로 ‘언표 행위’에서 ‘시적 직관’으로 ‘신비의 표상’으로 이어지는 포에지(Poesie)의 내밀한 작동 구조를 엿보고 있는 셈이다. 세 문장을 조율하는 카프카의 기획은(예를 들면, 서대경의 기획은) 우발적이고 얼개는 촘촘하다. 어쩌면 시란 시인이 만든 직관들이 평행하게 뻗어 가며 만드는 표상이고, 그 표상들은 수렴하지 않고 발산한다. 시는 결국 개별자의 삶의 리듬에 함몰된다. 때문에 시인은 직관 앞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와도 같고, 표상 이전에는 아직 할 말을 찾지 못한 그러한 사람일 뿐이다. 카프카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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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에덴의 기울기」 외 6편
같은 개(게), 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아요 불면의 밤을 보내며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을 가진 이름을 궁굴렸어요 그렇지만 뭐, 다시 출발선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죠 카이로스의 시간을 걸었어요 측면을 보며 가는 여정은 끝말잇기 같아요 예술적인 속도, 발목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 옆길로 새기도 하고 지나가는 트럭에 집게발이 잘려 나가기도 했어요 밀려가는 자막 속 이름을 다 읽지 못하고 떠나보내듯 몇 번의 계절을 그렇게 보냈죠 그러다 스텝이 엉키는 풀섶에서 문득, 기준은 나여야 한다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죠 옆으로 걷는 일은 슬픔을 밀어내기 좋은 방식이에요 발이 많아도 앞으로 갈 발이 없는 나에게 정면의 삶은 신기루예요 화려한 조명도 색종이 흩날리는 무대도 나를 스쳐 갈 뿐이죠 발밑엔 꽃이 지고 있지만 목적지는 까마득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제가 보이지 않거든 이해해 주세요 꽃을 안고 세상의 측면을 다 읽어 낼 때까지 풍경 속을 걸어야 한다는 걸, 확고한 신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