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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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사순절의 나날
낭송 : 신동옥 출전 : 신동옥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랜덤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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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비트 10
비트 10 신동옥 먼지 낀 사방나무가 비트 밖 오솔길에 그림자를 드리울 때 기억에 가물가물한 타깃의 표정을 애써 떠올린다. - 기적처럼 너를 다시 보는구나. 네가 아직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캐묻는 듯한 푸른 눈동자 - 모두 고아야, 삶은 거저 주어졌단다. 낯선 피를 받아들이려는가 별은 뾰족하고 소리가 없다. - 눈을 감으면 어둠을 볼 수 없어. - 이봐, 삶을 아끼지 마. 아득하고 그윽하고 깊고 쓸쓸한 총구 속에서 짐짝처럼 어둠에 실려서 살점은 이장移葬하는 일 - 이봐, 삶을 아끼지 마. - 눈을 감으면 어둠을 볼 수 없어. 인간은 저격수로 태어나 타깃으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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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배추흰나비 와불
배추흰나비 와불 신동옥 화순 세제골 처이모네 목탄 보일러, 증기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연통 위로, 줄기줄기 늘어진 시래기 배춧잎, 주름 사이로 기어가는, 하늘 뭉게구름에도 구멍 숭숭 뚫어놓고, 잎맥만 남아 파리하니 속이 다 비치는, 헛웃음에 한 백년은 늙어버린 손금에 고였다가, 솜털을 적셔 갈앉히다가 볼에 스미고, 까무룩 빛나다가 이내 날아가는, 물비린내 덜 여문 가을빛에 보일 보일 끓어오르다, 고롱고롱 맺혔다 풀어지는 담배연기로, 왕겨가루 폴폴 날리는 처이모부 밭은기침에, 공연히 궁싯대는 배추흰나비, 잔털 빽빽한 애벌레 물 마시러 마당에 내려서, 앉은 자리 옮기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운주사 臥佛은 누가 파먹었나? 눈알 가득 고이는 새벽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