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 아동문학평론
역사와 아동문학 나의 문학과 역사
특집
나의 문학과 역사
신현득
1. 시작하는 말
평자들이 내 문학의 일부에 ‘역사참여문학’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내가 이런 문학을 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태어난 불행의 소치에서다.
나의 출생은 일제에 저항하던 항일기였다. 출생한 해인 1933년은 윤봉길 의거 이듬해였고, 임시정부의 항일전이 계속되던 때였다. 일본의 자작극으로 시작된 만주사변 2년 후이기도 했다. 일본의 침략 마수가 대륙에 뻗어 있었던 때다.
이어서 지나사변, 총독부의 황국신민서사 강요, 창씨개명, 조선어교육 폐지 등 민족말살정책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는데 일제는 동아시아인 모두가 힘을 모아 침략자 미국ㆍ영국을 쳐부수는 전쟁이라는 뜻으로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 했다.
이러한 역사의 수난 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아픈 역사를 잊을 수 없다. 다만 나는, 시인인 까닭에 이를 시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솔 공이를 따고 근로봉사를 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처음 보는 태극기, 처음 배우는 애국가, 처음 배우는 우리글……. 이것은 광복과 함께 얻은 선물이었다. 그와 함께 안겨진 조국 분단 ! 그 불행 !
이러한 아픈 역사를 겪은 사람이 그 역사를 잊을 수 없다. 나의 문학에서 역사 참여를 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역사는 항일기 끝에 바로 분단기가 닥친 것이다. 강대국이 나라와 민족을 두 동강으로 갈라놓았다. 우리가 일제의 고통 다음으로 겪는 2차의 고통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내가 조국 분단의 앞뒤 역사를 조사 연구한 바로는 연합군이 2차대전 에서 우리를 동강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우리를 분단시킨 것은 강대국의 이기주의에 있었고 , 우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분단이 절대 원인이 돼 6ㆍ25전쟁이 일어났고 , 우리 3천만에서 15%인 450만의 사상자가 났다. 분단이 없었다면 어떻게 전쟁이 있었겠는가 ! 이후, 여기에 강대국과 주변국의 이권이 개입되어 우리의 통일은 분단 70년의 시점에서 보아도 아득하기만 하다.
2. 삼팔선은 장난이었을까 ?
그래서 나는 나의 시 작품에서 우리의 조국 분단을 강대국이 범한 ‘20세기의 죄악’으로 부르게 되었다. 삼팔선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 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하자 !’ 하고 문학의 주제를 잡았다. 아픈 역사가 내 문학의 주제가 된 것이다.
내게는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쓴 통일 염원의 시가 여러 편 있다. 아침 여덟 시 반이면 남과 북 어린이들이 함께 교문에 들어선다는 테마를 잡고 「여덟 시 반」이라는 동시를 창작한 것이 내 역사 참여의 시작이다. 이 작품은 나의 첫 동시집에 담겨 있다. 나의 조국은 어떻게 쪼개졌는가 ?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던가 ? 왜 우리는 이런 시를 써야 하는가 ?
힘센 놈은 그런 짓 해도 된다./ 만세소리 나는 땅에 삼팔선 긋기.// 들판이거나 , 학교 마당이거나 / 남의 안방 장롱 밑으로 경계선을 그어도 / 곧게만 그으면 된다.// 역사가 눈을 흘기며 / “20 세기의 죄악이다 !” 하고/ 외치거나 말거나 / 여기까진 네 차지 / 여기부턴 내 차지./ 곧게만 그으면 돼.// 남의 나라야 나누어지거나 말거나 / 한 마을이 두 쪽 나거나 말거나 / 한 가족 앉은 자리가 나누어지거나 말거나 / 하나의 학교가 남북으로 쪼개져도/ 곧게만 그으면 돼.// 마당 끝으로 경계선이 지나고 / 장독대 복판으로도 / 외양간에서 쉬던 송아지 등때기 위로도 / 경계선이 그어졌 다.// 전쟁이 되거나 말거나 / 몇 백만 쓰러져 죽거나 말거나 / 피로 강물이 되거나 말거나 / 전쟁고아 수십만이 생기거나 말거나다.
— 제13동시집 『고향 솔잎』(1997) 의 「삼팔선 긋기」 전문
강대국의 국가 이기주의에 의해서 우리나라는 이렇게 나뉘어졌다. 나뉘어진 우리 조국은 강대국과 주변국의 이기주의 때문에 통일이 요원한 형편에 놓여 있다는 말을 전기 前記했다.
3. 세기의 기적 , 통일이 된다면
그런데 정말 통일이 된다면 , 통일이라는 기적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소식을 듣고부터 / 필통 안 컴퍼스가 /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연필도 / 제가 필통을 열고 / 나오는 것이었다.// 교실은/ 책상들까지 / 덜컥거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제 / 우리나라 지도를 다 그리고 / 신의주 가는 찻길을 그려 놓고 // 백두산까지 달리는 바람이 / 구름 밀고 가는 걸 / 내다보았다.// 뒷벽 그림 속의 꼬마들도 / 그 바람에 / 모두 뛰어나와 / 떠들며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 제6동시집 『통일이 되는 날의 교실』(1981) 의 「통일이 되는 날의 교실」 부분
통일이 될 수 있을까 ? 세기의 죄악이 저지른 분단에서 세기의 기적이 이루어진다면 우선 , 교실에 있는 교구들이 그냥 있을 것 같지 않다. 교구들이 떠들며 돌아다닐 것 같다. 그림이 모두 살아나고 그림 속의 꼬마들이 그림 밖으로 나와 떠들며 돌아다닐 것 같다.
교실의 어린이들은 반쪽이 아닌 우리나라 지도를 모두 그리고 , 철도를 신의주까지 그릴 것이다. 바람도 구름도 이제는 막힘없이 백두산까지 달리는구나 , 하며 교실 밖을 내다볼 것이다.
통일이 되면 이 고통의 그 역사는 악몽으로 남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통일이 되거든 / 우리 같이 살게 되거든 // 같은 학교 / 같은 반 / 같은 책상을 / 같이 쓰는 거다.// “그때는 / 남이네 , 북이네 했지.”/ 옛말 해 가며 웃는거다./ 통일의 노래까지 / 싹싹 지우는 거다.// 점심시간 ,/ 도시락 반찬 / 나눠 먹으며 / “그땐 북이네 / 남이네 했지.” 하고/ 웃는 거다./ 운동장에 나가 / 공기도 하고 / 공도 차면서 ,// 떠들썩 우쭐대는 거다.
— 제14동시집 『대추나무 대추씨』(1999) 의 「통일이 되거든 , 우리」 전문
통일이 되고 남북 어린이가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며 지난날을 돌이키 는 그때가 오면 얼마나 , 얼마나 좋을까 ? 그런데 그것이 요원하다.
여기서 생각할 일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겉으로 평화와 우의를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우방이라는 나라들이 모두 그렇다. 6ㆍ25 통일 전쟁에서 중공군을 보내어 , 될 뻔한 통일을 방해했던 공산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빼앗아 저희 것으로 하겠다며 동북공정 東北工程을 내건 것도 그거다. 우리가 고구려 땅 내놓으라 할까봐서 선수를 친 거다. 나는 공산중국의 신제국주의 新帝國主義에 대응하는 시를 쓰기 위해 몇 해 전 동북 東北 현지를 답사한 일이 있다.
4. 고구려 정신
제2동시집에서 제호가 된 「고구려의 아이」는 성공작이라는 말을 들었고 , 그것이 내 필명이 되기도 했다.
동시집 『고구려의 아이』(1964)는 ‘어린이에게 역사를 바로 가르쳐 자긍심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작품집이다.
이 시는 주제가 강해서 오늘의 동북공정을 50년 전에 대응한 예언의 작품이 되었다. 같은 시집에 단군의 개천 開天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첫날」, 고주몽 탄생 설화를 내용으로 한 「알 속의 임금」, 첨성대의 역사를 살펴본 「첨성대」 등이 있다.
이후 나는 ‘고구려의 아이’를 필명으로 하면서 고구려 정신을 내세워 왔다. 고구려 정신은 민족을 생각하는 용기이며 , 이 정신이 우리의 올바른 사유와 행위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 일관된 나의 주장이다.
『고구려의 아이』는 20연에 가까운 길이의 이야기였는데 어느 출판사 에서 이 한 편으로 단권의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고구려의 엄마는 / 아기가 말을배울 때면 / 맨 먼저 / ‘고구려’라는 말을 가르쳤다.// 아이가 꾀가 들어 / 이야기를 조르면 / 고구려의 엄마는 / 세상의 온갖 이야기 중에서 / 살수싸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의 많은 장수 중에서 / 을지문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의 여러 임금 중에서/ 광개토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략) 고구려의 아이는 / 끝없는 벌판으로 /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 하늘이 움직여라 고함을 쳤다.// 우리는 커가는 나라 / 고구려다 / 고구렷 !
— 제2동시집 『고구려의 아이』(1964) 의 「고구려의 아이」 시작과 끝부분
이 서사시는 요동 싸움에서 전사한 용사의 아들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서 아버지를 뒤이어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 요동으로 말을 달리며 외치는 내용이다.
5. 유관순을 죽인 칼
이밖에도 이 제 2동시집 안에 게재된 역사 참여의 작품으로 , 유관순 열사 죽음의 순간을 테마로 한 「아무도 말려주는 이가 없었다」 등이 있다.
그것은/ 칼이었지./ 지금 막 사람을 죽이고 있었어.// 소녀의 몸뚱이를 자르고 있었지./ 피가 튀고 있었었지.// 죽지 않으려고 소녀는 / 발악을 하고 있었지./ 그러나 아무도 말려주는 이가 없었단다.// 얼마나 아팠을 까?// 그것은 / 왜놈의 손에 쥐인 칼이었어./ 그리고 남은 것은 / 토막으로 잘린/ 우리 관순이의 몸뚱이였지.// 피가 튀고 있었지.
— 제2동시집 『고구려의 아이』(1964) 의 「아무도 말려주는 이가 없었다」 전문
우리 유관순 열사를 세 토막 내어 죽이는 순간을 담은 내용이다. 끔찍하다. 그렇게 혼자 당하며 , 혼자 죽어갔지만 ‘그러나 아무도 말려주 는 이가 없었단다’는 사실이 중심구다. ‘얼마나 아팠을까 ?’는 동심의 안타까운 생각이다. 이걸 말려주지 못했으니 …….
유관순뿐이랴. 수많은 애국지사가 이렇게 죽어갔다.
6. 안중근의 손도장
안중근의 손도장 앞에 서면 부끄럽다. 나를 뉘우치게 된다. 왜 그럴까 ? 내부족한 것이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 대한국인 안중근 !/ 그 밑에 손도장 / 약지 한마디가 없는 손바닥 도장.// 손을 대어본다./ 내 손보다 크지 않다./ 그런데 나는 왜 작을까 ?/ 왜 안중근보다 매우 작을까 ?// 왜 부끄러울까 ?/ 안중근의 손보다 / 손가락 하나 더 있는 것이 , 왜?
— 제16동시집 『내 별 찾기』(2000) 의 「안중근의 손도장」 부분
안중근은 나라 도적을 쏘아서 없앤 사실 이전에 그의 손도장에서 느끼는 애국심이 크다. 그 앞에서 자기가 작다는 걸 느낀다. 부끄럼을 느낀다. 손가락이 말짱해서 부끄러운 것이다.
7. 기생충에도 애국심
이 밖에도 역사 참여 작품으로 기생충의 애국심으로 이완용을 찌른 「매국노의 배 안에 회충 한 마리」(3집)를 보자.
배 안에서 들으면 / 살찌는 소리 / 배 커지는 소리.// 도대체 이놈은 누군 가?/ 목 너머로 / 맛 좋은 음식은 넘어오는데.// “빠가 야로오.”/ “빠가 야로오.”/ 저건 또 무슨 소린가 ?/ “히히히히…”/ “해해해해…”/ 악마보 다 잔인한 웃음소리. (중략) 하루는/ 옥새를 빼앗아다 찍는 소리.// “이놈이 다!/ 매국노구나 !”/ “너의 간덩이를 / 창자를…….” 회충은 / 배 안에서 뒹굴었다.// 나라 팔아먹던 그날 / 매국노 / 몹시 배가 아팠다.
— 제3동시집 『바다는 한 숟갈씩』(1968) 의 「매국노의 배 안에 회충 한 마리」 부분
동화적인 수법이지만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뱃속 회충도 애국심이 있는데 회충만도 못한 인간 매국노는 얼마나 악질인가 ?
8. 맺는 말
1987 년부터 나는 자유시 전면을 연구하면서 온 국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의 갈래를 내세워 시집을 몇 권 내었는데 , 동시의 개념을 연장한 것이었다. 어린이를 주 독자로 하는 자유시의 갈래가 ‘동시’이며, 청소년을 주 독자로 하는 시의 갈래를 ‘청소년시’로 이름 짓고 있다. 시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이 누구나 읽고 즐길 수 있는 시를 ‘국민시’ 라 이름한 것인데 , 제5집에서 주위의 의견을 모아서 확정한 문학용어다.
국민시 제 1집의 제호가 『우리의 심장』(1978)이었다. 바다에서 하나 된 대동강 , 한강 물이 우리 심장의 피가 되어 뛰고 있다는 강한 이미지의 것이었다. 통일 염원을 담은 시였다. 제5집 『우리를 하나의 나라로 하라』(2012) 는 조국을 분단시킨 강대국에 대해 책임을 묻는 목소리였고 , 제6집 『동북공정 저 거짓을 쏘아라』(2012) 는 우리의 고대 역사를 송두리 째 빼앗아가려는 오늘의 중공에 대해서 외친 것이었다.
『속좁은 놈 버릇 때리기』(2015) 는 시집의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 지난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항의의 주제다. 힘 있는 자에게는 알랑대고 , 이웃나라 사람을 재미삼아 죽여 온 살인 집단 일본에 대해 아픈 매를 때려서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다.
동시ㆍ일반시를 나누어 생각할 것이 아니다. 시인의 감각에는 고통이 더하다. 그러므로 아픈 것을 “아프다!” 하고 소리쳐야 시가 된다.
申鉉得 shinhd7028@hanmail.net 동시인. 1959 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입선으로 등단. 방정환문 학상ㆍ윤동주문학상ㆍ소천아동문학상ㆍ세종아동문학상ㆍ윤석중문학상 등을 받음. 동시집 『고구려 의 아이』 등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