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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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그가 누웠던 자리
그것은 시인의 “나도 모를 아픔”을 윤리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시인은 병 없이 앓는 자다. 윤동주의 “나도 모를 아픔”은 훗날 이성복에 의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표지 글)라는 인식론으로 변주된 그 아픔이고, 황지우에 의해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황지우, 「산경」, 『게 눈 속의 연꽃』)라는 윤리학으로 확산된 그 아픔이다. 윤동주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인가. 1연에서 그는 앓는 세계를 발견했고, 2연에서는 세계의 고통 속에서 더불어 아픈 시인의 자리를 인식했다. 아직까지 그는 그저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라고만 적었을 뿐이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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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수수대궁
지운 글씨 바깥으로만 성에가 피어서 그 아픔, 영영 녹을 것 같지 않은데 아침 햇볕이 창문을 비추자 슬픔의 글자들은 물방울에 녹아 和音처럼 반짝이며 흘러내린다. 당신이 내게 던진 말, 창, 칼 그런 것들도 조금씩 녹아내린다. 빈 수수대궁 속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가만히 당신의 손 잡고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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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랑에 관한 짧은 몸살
사랑에 관한 짧은 몸살 천서봉 지렁지렁, 사인곡선처럼 반복되는 환청 듣는다 별들이, 머리맡에 모여 묻는다 그립냐, 그립냐고 발음하는 그 발긋발긋, 열꽃들 이마에 필 때마다 창문은 제 흐린 예감이 가렵고 믈컹믈컹한 살 금방이라도 허물 듯 나는 헛땀 쏟는다 이제 곧 비가 오리라 살기 위해 머리 내미는 가느다란 기억의 농담(濃淡)들, 몸을 허락하는 것보다 사랑한다 말하는 일이 더 어려웠던 여자가 있어서 꼬물꼬물 콩나물 대가리처럼 피는 아픔 있어서 힘겹지만 아름다운 진흙 향기 하늘까지 오른다 머리가 끊어지면 꼬리가, 꼬리가 끊어지면 머리가 대신하는 ······, 추억의 몸, 몸들 왜 만질 수 없는 강박의 방들은 모두 환형(環形)인가 내 머릿속 황토밭, 지렁지렁 당신을 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