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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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참을 수 없는 식탁
작가소개 / 엄창석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소설집 『슬픈 열대』, 『황금색 발톱』, 『비늘 천장』, 장편소설 『어린 연금술사』, 『유혹의 형식』, 『빨간 염소들의 거리』 등 출간. 한무숙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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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창석 돌풍이 불면서 햇볕이 내리쬐던 변덕스런 8월의 한낮이었다고 기억한다. 거리에 낙엽과 비닐 조각이 휩쓸려 다니는 밤이었던 것도 같다. 낮인지 밤인지 아리송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여간 그날 나는 무흥에 가 있었다. 도로변에 차를 세워 두고 좁은 비탈길을 내려갔다. 돼지국밥집과 방앗간과 차양막이 휘어진 과일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비바람에 날려 온 가로수 잎사귀가 손바닥처럼 붙은 의상실 유리창 안으로 펠트 모자를 쓰고 담홍색 스커트를 입은 플라스틱 여자 모델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거리가 낯설었다. 내가 무흥의 그 동네에 갈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아서겠지만, 사실 처음 와본 것 같았다. 이곳으로 올 의향은 전혀 없었다. 청송에 있는 한 계곡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급히 텐트를 걷고 돌아오는 길에 35번 국도로 내처 달리지 않고 무흥시로 핸들을 꺾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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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고질라 씨 문방구
엄창석 그는 흡사 손풍금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주름 통에 공기가 팽팽히 부푼 손풍금의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금방 뿌우, 소리를 내지르는 것처럼 누가 그에게 말을 걸면 지체 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그에게서는 어떤 자의식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에 심리적인 회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가 ‘미도 문방구’ 주인인 고질라 씨이다. 키가 백팔십 센티미터를 웃돌지만 오히려 둥그스름하게 보일 만큼 엄청난 덩치를 가진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봄부터였는데, 유월이 끝나 갈 무렵에는 제법 심각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 위기가 그에게 어떠한 심리적인 균열을 안겨다 주었는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손풍금의 건반 틈서리에 끈적끈적한 액체라도 들어간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이 그에게 나타났다. 내가 그날 고질라 씨 문방구 앞으로 간 것은 오전 열한 시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