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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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zero
“네가 알고 써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오감도」 제4호는 숨겨진 자아를 시각적으로 보여 준 작품이거든.”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 유진을 쳐다보자 겸연쩍다는 듯 피식 웃었다. “물론 평론가 해석이야. 꼭 그것이 아니어도 거울에 비춰 보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볍게 무너트리려는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지. 난 이상 시를 처음 봤을 때 숫자와 글자에 내포된 의미보다는 일정하게 반복되는 형태와 이미지가 추상회화 같다고 느꼈어. 네 그림을 본 순간 나 말고 또 누군가 이상의 시에서 그런 미학적 조형 요소를 발견했다는 것이 반가웠어.” 예상치 못한 거창한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우연히 보고 필 꽂혔을 뿐인데요.” “그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테지?” 유진의 질문에 처음 시집을 펼쳤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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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달면 삼키고 쓰면 글이다] 1화 : 자하문로, 이상과 윤동주.
그전까지 접한 『오감도』와 『날개』엔 무기력한 절규가 풀풀 풍겼다. 하지만 문예지 『중앙』에 실린 『내 동생 옥희 보아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연인의 손을 잡고 밤도망을 친 막내 여동생 옥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팔월 초하룻날 밤차로 너와 네 연인은 떠나는 것처럼 나한테는 그래 놓고 기실은 이튿날 아침차로 가버렸다. 내가 아무리 이 사회에서 또 우리 가정에서 어른 노릇을 못 하는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기로서니 그래도 너희들보다야 어른이다. 이상은 큰오빠인 자신을 속이고 야반도주한 옥희에 대한 서운함으로 운을 뗀다. 이후 험난할 동생의 만주 생활과 슬퍼할 부모님을 걱정한다. 여기까진 이상이 가부장적 장남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곧 급변한다. 부모들도 제 따님들을 옛날 당신네들이 자라나던 시절 따님 대접하듯 했다가는 엉뚱하게 혼이 나실 시대가 왔다. 오빠들이 어림없이 동생을 허명무실하게 취급했다가는 코 떼일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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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책방곡곡] 제주풀무질(제2회)
글자를 세로 가로로 크게 쓰거나, 한자를 써서 입체감을 주는 방식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거든요. 1930년대 시인 이상이 그런 방식으로 『오감도』(1934)라는 시집을 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선구적이에요. 김숙이 : 김지연이 쓴 「공원에서」를 보면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힘들구나 싶어요. 여자인데 오히려 여성처럼 다니지 않으면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또 불륜을 서로 합의를 하는 모습에서 세대 차이를 느꼈어요. 아내가 있는 남자를 만나는 여자가 아주 당당해 보여서 충격적이었어요. 이 소설 169쪽을 볼게요. “내일 와이프 내려온대.” “뭐?” “내일은 오지 말라고.” “그 얘길 왜 지금 해?” “그럼 언제 해?” 이렇게 유부남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 놀라웠어요. 또 공원 화장실에서 나가면 어떤 남자가 당신을 해칠 수도 있다고 시그널을 주었는데도 당당히 나가는 것도 이해가 안 되었지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실험정신을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