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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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너와 나의 큐레이터 외 1편
《문장웹진》이 주목한 2012년 젊은 시인들 강윤미 너와 나의 큐레이터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림 하나 걸려 있다 물감을 짜놓은 듯 어둠이 질퍽하다 다시 물감이 마르듯 달빛이 딱딱해진다 너는 사과와 접시와 유리병으로 이루어진 정물화 나는 꽃과 연못과 구름으로 이루어진 풍경화 너는 맘에 든 탁자 위에 하얀 식탁보를 깔고 사과와 접시와 유리병의 위치를 정한다 꽃과 연못과 구름이 있는 공원으로 간 나는 액자와 어울리는 오전 11시의 풍경을 고른다 너에게는 사물의 각도에 따른 그림자와 어둠의 밀도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햇빛이 비치는 각도와 풍경의 감정을 눈여겨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네가 남겨놓은 고요를 배우며 사물은 사물로 완성되어간다 시간의 원근법, 내 붓은 풍경으로부터 벗어난 풍경이 된다 사람들은 네가 선택한 사물이 상징하는 의미를 찾으려 눈을 붉힌다 내가 선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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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미술에세이②] 변형의 정신과 사랑의 내력
회화상(繪畵上)의 원근법(遠近法)에다가 입체라고 하는 몸을 부여하는 기분을 갖게 한다. 그 볼륨감 있는 육체성, 글래머인 기명(器皿)에 때때로 사람들은 술과 고기와 밥과 찬(饌)을 담아낸다. 그럴 때 그림을 슬쩍 가리는 듯해도 오히려 열리는 기분이다. 단순히 예술품입네 하고 장식으로 놀릴 때보다 실용으로 사용할 때 묘한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 그릇과 병(甁)에 음식과 술을 담아 먹음으로써 본의 아니게 우리는 도자기에 그려진 풍경과 풍물의 속내를 즐기는 묘한 관음증적 쾌락도 맛본다. 그림에다 음식을 담는 것이고, 그림 속 풍경에서 음식을 떠내는 것이다. 그림 속의 강 위에 잡채를 올리고 그림 속의 산봉우리에 닭새우를 올렸다. 그림은 바닥에 놓여 사람을 올려다보고 사람은 그 그림을 내려다보거나 옆 사람처럼 곁에 둔다. 조촐한 음식도 때로 푸른 하늘에서 떠올려져 사람의 입에 든다. 수양버드나무가 그려진 주병을 기울이면 은은한 향의 술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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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생태계’를 말하기 전에 질문할 것들
이것이 이른바 근대적 사유의 철학적 출발을 예고한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나 혹은 근대 예술사의 획기적 발명이었던 원근법 등과 같은 선상에 놓인 일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관련하여 (인도유럽어족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근대 이래의 언어학에서 추방된 중동태(中動態, middle voice)의 존재 및 그것을 대체한 능동/수동의 도식을 떠올려 보아도 좋다. 한국어에는 없는 문법요소지만 능동태/수동태의 이항대립적 태(態, voice)의 구도가 중동/능동의 구도와 그 의미를 대체했다고 일본의 한 철학자는 규명한다.4) 실제 우리는 늘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능동적 인간이 되기를 권장 받아 왔고, 일상적 언어의 사용에도 이런 가치관계는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수동보다 능동적 행위성의 우위를 통해 주체, 주체성의 의미가 확보되어 오기도 했다. 그러하니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개인이 기본값이 된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