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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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미래가 열렸던 시간들을 위해 3
당대 운동의 동력은 한국 사회의 변혁에 대한 열망이었고, 이 열망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와 그 이념 안에 욱여넣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가능성의 공간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젝은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실증적인 내용의 측면에서 공산주의 체제는 공포와 비참을 야기한 침울한 실패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어떤 공간, 유토피아적 기대의 공간을 열어 놓았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를 평가할 수 있게 해주었다”1) 1) 지젝, 『시차적 관점』,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574쪽. 라고 말한다. 당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반체제인사들이 “현존하는 공산주의 정권을 본래적 인간 연대를 위하여 비난할 때”,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공산주의 자체에 의해 열린 자리에서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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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문학과 생태계
가령 ‘세계의 자아화’라는 서정 장르의 이념 혹은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대척점에 두며 그 통합을 말하는 시 장르의 방법이 바로 이러한 세계관의 흔적 아니었던가. 그러하니 2천년대 이래 가령 미래파라고 지칭된 시인들과 그 이후 세대 시인들의 시가 서정 장르를 근본적으로 질문케 했다는 기존 논의들도,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틀로 수렴되지 않는 오늘날 문학 현장의 장면들을 간파했던 셈이다. 2천년대부터 서구 문학계, 철학계에서는 인간 의식이나 감정을 투사하며 추상화되곤 했던 자연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해지는데, 사후적으로 돌이켜보면 동 시기 한국어 문학의 서정 장르가 바로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을 동시대적으로 선취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2) 제인 베넷. 3) 이 말은 마르크스주의 생태철학자 제이슨 무어의 ‘세계생태론’, 사이토 고헤이의 ‘물질대사론’ 등의 논리 구조를 빌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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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제4회] 커피
- 『대화적 현상학의 이념(The Idea of Phenomenology)』 어린 시절의 우리는 숲 속에 들어가 길을 잃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숲 속 나무와 풀들이 전해주는 화려함과 다양함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살펴볼 겨를도 별로 없습니다. 반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묘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숲 밖으로 나와 숲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간격을 확보한 사람과 같습니다. 숲 밖으로 나왔지만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 그것을 응시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간격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고 말했을 때 슈트라서가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 혹은 글쓰기는 ‘간격 두기’와 ‘다리 놓기’라는 두 가지 상반된 운동이 하나로 결합될 때에만 가능한 겁니다. 분리와 화해의 경험이라고 할까요. 뭐 이런 이중적 경험이 글쓰기의 경험입니다. 작가를 포함한 모든 인문학자들의 글은 이런 경험을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