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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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묘妙
묘(妙) 이대흠 소태처럼 쓴 것은 아니고 쌉싸름한, 없는 입맛 헹구어주는 씀바귀나물 같은, 설탕처럼 단 것은 아니고 좀 달짝지근한, 싱거운 듯, 조깐 심심한 듯, 갓 짠 참기름처럼 진한 것은 아니고 꼬순내 나는 듯한, 모굿대랑 피마자 잎이랑 호박잎이랑 비온 뒤 그것들 데쳐서 곤자리 젓에 매운 고추 버성버성 썰어 넣어 식은 밥 한뎅이 싸서 함뽕 했을 때처럼 혀가 살아 징그랍게 맛나던, 당신의, 당신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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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내게 슬픔이 있다면
내게 슬픔이 있다면 이대흠 묵은 매화 껍질 뚫고 자라난 여린 가지 한숨처럼 눈뜨는 꽃눈 같은 것이라고 신선이 춤추는 형국이라는 그 마을 살보다 붉은 언덕 너머로 옷고름처럼 풀어진 하얀 길 위로 내 어린 신부가 똬리에 물동이 이고 이마 훔치며 넘어올 때 아지랑이 매화 향 와락 번지는 어지러움 같은 것이라고 소녀는 가까워지며 몸이 자라고 제 눈앞의 길만 보고 있을 때 돌담 모퉁이에 박힌 못난 돌멩이처럼 나는 붙박인 자리에서 제 안이 까맣게 굳어지는 줄도 모르고 물 한 모금 기다리는 목마름 같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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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키스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키스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이대흠 키스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안개처럼 자욱한 키스 속에 서서 당신에게 빨려드는 나를 바라봅니다 당신의 입술이 내 몸 구석구석에 닿는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 있습니다 쏟아지는 입술은 꽃잎 끝 같고 물큰 달개비 겨드랑이에선 듯 비린내가 납니다 맑아라 아 맑아서 향기까지 스며 있는 달개비 잎 끝의 이슬처럼 키스가 아슬아슬합니다 키스는 자욱하고 상큼하고 뾰쪽한 가지를 동그랗게 만들고 방울방울 맺히고 몽글몽글 키스의 입자들이 공기 중에 떠돌고 있습니다 당신이 또 해 뿌리 같은 키스를 쏟아내어서 나는 후끈 용광로에 스친 듯 후줄근히 당신의 키스에 젖습니다 당신을 입자 당신만을 걸치고 새순처럼 명랑하자 키스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당신이 퍼부은 축복을 감당하기 좋아서 홀랑 젖은 꽃잎 같은 당신이 맺혀서 어떡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