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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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수서
수서 임효빈 수장을 끝낸 강물의 뒤척임이 조심스럽다 말을 건네려는 강물의 눈빛에 나무는 강모래 한줌 쥐고 뿌리를 내린다 바람에 물들면 소망이 길어져 강의 기침이 쌓인 바닥을 가만 품는다 기별처럼 다녀간 별의 발자국에 휘기도 한다 새들의 영혼을 허밍으로 빼앗아간다는 수초와 물에 빠진 달빛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나무가 귀를 연다 나무의 심장소리가 들리고 강물이 흐르는 웃음으로 옆구리를 흔든다 안도하는 몸짓으로 강은 물을 힘껏 밀어 올려 나무의 입술에 닿는다 어린 말이 터지려 한다 나무의 봄이 열리는 동안 사람의 기척으로 강물이 귀를 닫는다 강물이 연두를 훅 불어 꽃잎을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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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건조 주의보
건조 주의보 임효빈 버블버블 웃음으로 연기하는 남자는 어떤 배우였을까 늙은 배우는 남은 몰입을 지우려 손을 씻는다 거품을 내지 않는 세면대 마른 비누의 차가움 식어 가는 열정을 움켜쥔 늙은 배우 같은 비누 분장 없는 얼굴 같아 자꾸 문질러 본다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날마다 새로 작아지는 비누는 방백 같은 향기가 미끄러지고 있다 아찔하게 틀렸던 거기, 당신 있습니까? 당신 없는 길은 길을 모르고 나는 놓지 않아요 여기 늙은 배우의 독백은 세면대를 느리게 훑고 어제와 다른 역설의 감정을 잡아 본다 꺼지는 거품이 잠자는 거품을 호명하는 소멸의 비누 옆에서 생각한다 어둠의 역할은 태생이라며 환절기가 보내는 과하지 않은 감정의 무게를 견디는 중이다 터지는 독백처럼 자연발화 할 것 같지만 불꽃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고 늙은 배우를 기록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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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램프 이야기
램프 이야기 임효빈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은 성자처럼 산다지 삼백예순다섯 날 물개 기름 램프를 켜놓은 이글루는 성전이 된다지 그을음 없는 어깨와 어깨를 비벼 체온을 지핀다지 성전의 눈꺼풀을 열고 입김을 뱉어내면 난기류도 기침을 멈춘다지 스스로 날것이라 여겨 어느 것도 익히지 않는다지 천천히 혹한의 뿔을 살피고 두 손을 모아 기다릴 뿐 벗겨질 가죽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지 물개 기름 램프는 꺼지지 않을 침묵만 피운다지 그림자를 태워 불꽃의 심장을 만든다지 한 사람의 그림자가 다 탈 때까지 생각의 재를 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다지 고민의 시간이 쌓여 이글루 안은 푸르게 희다지 어둠이 바다사자와 물개와 고래의 피를 마시며 이글루를 지키다 그중 하나의 울음이 빙하를 적시면 떠난다지 이누이트족은 성부의 발자국에 성호를 긋는 램프를 켜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