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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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자연
자연 - 백마 권민경 연인들이 나들이 오던 역 사람들 소요 너머로 십 분만 걸어도 무덤 무덤이 이어졌다 풍수지리가 뛰어나 양반들 묘가 가득 마구잡이로 자랐다 무덤 위를 구르고 십이지 석상에 오르며 나는 조상 조상이 될 예정 아니 영영 후손을 보지 않고 무덤도 갖지 못할 예정 예정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고 나는 우연으로 혹은 유전병으로 그저 굴렀다 죽고 사는 게 다 무엇이냐는 듯 무덤 석상 백마의 가장 은밀한 곳을 굴렀다 백석과 마두에서 한 글자씩 따온 지명 마치 가계도 같다 아무개와 아무개가 접 붙어 아무개를 낳고 아브라함의 자손 아무개가 한 지파의 으뜸이 되는 것처럼 백석과 마두가 접 붙어 백마를 낳은 것처럼 나는 완수와 한옥화의 부산물 아무개의 대표 연인이 스르르 늙어 애니골로 돌아올 동안 무덤을 뭉개고 세월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 이윽고 늙어 간다 단지마다 나무가 우거지고 신도시는 반어법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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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자연 : 이게 합의해 준 은혜도 모르고. 너 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빵에 있어. 영서 : ……헛소리 할라믄 가라. 자연 : (뺨을 보이며) 어때, 감쪽같지? 영서 : 그러네. 자연 : 강지수 엄마한테 수술비 받았어. 영서 : 나한테 받아야지 왜 걔네 엄마한테. 자연 : 왜긴, 강지수가 너한테 시켰잖아. 넌 돈 없을 게 뻔하고. 영서 : (한숨) 자연 : 아, 나도 정학이나 당할까. 낮에 학교도 안 가고, 팔자 좋네. 영서 : (헛웃음) 야, 쓸데없는 소리 할라믄 학교나 가. 자연 : (유모차 보며) 타봐도 되냐? (유모차에 앉는다) 영서 : 아씨. 자연 : 야, 밀어 봐. 영서 : 뭐? 자연 : 밀어 보라고. 황금동이 타고 있을 때처럼. 영서 : 허참. 황영서, 유모차를 민다. 황금동, 옆에서 아이들을 따라 걷는다. 자연 : (유모차에 기대며) 이런 뷰였구만. 영서 : 뭐가. 자연 : 황금동이 본 경치. 영서 :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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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식탁, 세계화되는 몸의 현장
유기농, 무공해, 자연산, 수제, 소량생산, 첨가물 없음, 자연 숙성, 자연 전망, 내추럴, 자연에 가까운 것, 그리하여 자연 자체! 이 ‘자연 자체’는 현대 문명이 발견한 최후의 강력한 상품 전략이자, 현대 자본주의의 상품 회로가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는 자연의 매트릭스이다. 슈퍼마켓의 진열대 위에 깔끔하게 정렬된 유기농, 무공해, 내추럴, 자연 들! 빤한 술수이거나 빈약한 기표에 불과한 저 ‘자연 표’ 상품들의 호소 방식은 요란할 뿐 아니라 거의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문명을 벗고 자연을 육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품들의 노골적인 발언과 표정, 얄팍하고 허술한 무대화의 미장센을 보라. 그렇게 하여 자연은 슈퍼마켓의 상품으로 부활하고, 지구는 슈퍼마켓의 진열대 위에 간단히 압축되고 재구성 된다. 초월적인 훌륭한 시장, '슈퍼마켓Super-Market'은 전 세계 곳곳의 자연을 자본의 회로를 통해 간단히 수합하고 유통시키고 판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