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최종회
장편연재 8회(최종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10. 크리스마스에는 싸우지 않기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단다. 그 인간이 돌아온대! 그 인간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한테 돌아온다는 사실을 너도 알아야 하는데. 언제 헤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이런 호들갑조차도 그 인간에게는 과분하지. 어쨌든 잇몸에 마취 주사를 맞고 뭉치 솜을 악문 채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뭉근한 통증을 견디고 있을 때처럼 기분이 이상했어. 그렇다고 이토록 이상한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엔 나 혼자 ‘긴급 뉴스 긴급 뉴스’라고 외치며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나는 사실 얼마 전에 홀연히 북쪽 도시로 돌아왔단다. 어느 날 내 귀에서 피가 났거든. 피는 곧 멈췄지만 계속 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어느 날 마음속에 커다란 저장고를 만들었지.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7회
장편연재 7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9. 베이비, 미안해 뜨거운 여름이었어요. 목이 타 수시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었어요. 몸이 금세 땀에 젖었고 옷도 후줄근해졌어요. 빈 물통들이 좁은 승합차 안 곳곳에서 통통 튀어 올랐어요. 겨드랑이부터 젖기 시작해 양 앞가슴 쪽으로 점점 퍼졌던 땀 얼룩도 생각나는군요. 사실은 그 여름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줄기, 흙내 섞인 퀴퀴한 냄새들이 여기저기서 진동했어요. 마치 동물들이 떼 지어 시내 구경이라도 나온 것 같았죠. 정말 이상한 건 우리가 빌딩 앞에 도착해 승합차에서 내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토네이도 같은 폭풍이 몰아치면서 계절이 초겨울로 변했다는 사실이었어요. 마술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살았던 평원이 말짱 다 거짓이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우린 얼어붙어 버렸어요.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6회
장편연재 6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그날은 내가 열일곱 살이 되는 날이었죠. 나는 열일곱 살짜리 노인이었어요. 날씨가 아주 맑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눈을 뜨지 못했어요. 겨우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았을 때 나는 마침내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특별히 비빌 언덕도 없는 사람이 나였죠. 그러나 모든 게 너무 치사했어요. 그나마 그 잘난 평원 위에서조차도 점점 밀려나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손바닥은 마른 돌 표면처럼 버석거리고 머리카락은 옥수수수염처럼 힘없이 늘어지고 피부 표면은 더 검고 두꺼워졌어요. 천막 한 귀퉁이에 매달려 간당거리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꾸만 화가 났어요. 누군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다시 태어나고 싶었어요. 일 년을 살다 죽어도 미친 평원 같은 곳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죠. 그렇다고 가서 살고 싶은 다른 장소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