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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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생장
생장 — 머신 러닝 3 정우신 페인트가 벗겨진 지붕 풀이 자란다 축사를 지나 감나무가 있는 폐가를 지나 둑길을 따라 풀이 자란다 냇가는 시간을 물결로 바꾸는 중 얼굴을 건져 본다 엄마 엄마야? 엄마가 맞아? 엄마 어디 갔어? 어디야? 안 갈 거야? 나 좀 데리고 가…… 나 좀…… 작업복의 나프탈렌 냄새 너는 올해도 벌초를 하는구나 개가 짖고 고추가 말라 가고 새로운 무덤에 풀이 자란다 방금 전까지 밥을 지어먹었는데 중절모를 고쳐 쓰며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믐, 믐, 믐, 므음, 믐, 믐, 믐, 믐, 므음 얼음! 얼음! 양에게 먹이던 지푸라기를 토끼에게 주지 마라 바람이 죽었잖니 풀은 자랄까 내 위로? 아래로? 나보다 먼저? 아냐 아냐 막걸리를 한잔 더 마셔야 해 안으로 안으로 조금 더 깊숙한 곳에서…… 풀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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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가타카
가타카 정우신 살아남은 포유류의 척수에 바늘을 꽂고 이동 중이었지 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피를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겠나 분해되고 싶었지 우주처럼 꽃잎을 떨어트리려는지 다른 꽃잎과 묶으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불고 사랑이라는 말은 미래를 속이기 좋았네 당신은 일찍이 그걸 믿지 않았지 아니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피부를 내주었던가 한쪽 눈을 감으면 아직도 당신이 바라보던 세계가 보인다네 세계라는 말도 역시 참 질기고 우리의 욕망을 분배하기 좋았지 꽃잎을 하나 둘씩 흩날리며 더 해보라는 듯이 당신은 나의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네 내가 비난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 덩어리가 완성되길 기대했다네 과연 나는 먹음직스러운가 종교를 알아보게 피를 교체한 다음날은 당신이 살던 시절이 자꾸만 나타나 끔찍하다네 그럴 때면 샐러드를 만들고 술을 데우지 목숨이 하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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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8 올해의 시
* 선정작 3 : 정우신, 「지구」, 《시인수첩》, 2018 봄* 선정 이유 : 우리는 아픔을 느끼지 않네, 이국의 하늘에서 우리의 혀를 잃었기에 [caption id="attachment_143242" align="aligncenter" width="300"] 정우신, 「지구」,《시인수첩》, 56호(2018 봄)[/caption] 이렇게 압축 가능하다. 우리는 아픔을 느끼지 않네,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혀를 잃었기에(횔덜린). 왜 그런가. 화자는 명백히 지구인처럼 보이지만 지구를 "다른 행성"처럼 "관측"하는 중이다. "절단된 무릎"과 "뿌리 뽑힌 향나무"로 미루어보건대 지구는 이제 폐허인가 보다. "삶은 지속되지 않는데 이야기가 계속될 필요가 있"는지 되물어지는, 미메시스 자체가 거부되는 공간이랄까. 정황이 이러하다면 '나'는 자기 나라의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을 터. 다만 '나'는 "관측"하기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