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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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스웨터는 해변으로 돌아가고 싶다
스웨터는 해변으로 돌아가고 싶다 조용우 밤바다는 희고 맑고 털이 반쯤 뽑힌 겨울이 모래톱에 엎어져 있었다 파도가 깨끗이 녹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모래가 얼고 풀리고 다시 풀리고 여전히 삼한사온의 나날들 그 위로 평일 오후가 줄줄 새어 드는 것이 보인다 인덕션 위의 고요는 둥글고 더 흔들리고 카키색 스웨터를 입은 내가 나를 대신해서 머그잔을 닦는 오후 속에서 죽었는지 아닌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고 그래도 겨울의 절반은 아직 순하고 따듯하겠지 물이 다 끓으면 주전자에서 소리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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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빛을 버리는 부분
빛을 버리는 부분 조용우 여름 내내 겨울에 봤던 버려진 그 개와 아주 닮은 버려진 개가 천변을 달려가는 모양을 본다 저 노란 꽃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다는 것 하나 구겨지지 않고 밝다는 것 개천에 돌을 던져 넣는 아이들 물수제비도 못되고 그냥 집어 던진다 계속해서 개 한 마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개 한 마리가 사라진다 아무리 돌을 옮겨 넣어도 빛은 넘치지 않고 나머지 빛처럼 나머지 개처럼 셀 수 없는 것 저 개도 수를 셀 줄 안다는 것 저 빛을 모두 버릴 수 있듯이 저 빛은 다시 쓰이고 우리는 또 천변을 걸으며 나도 그런 개를 본 적이 있다 말했다 나도 그런 개를 본 적이 있다 답했다 그리고 딱딱한 빛 몇 개 또 개천을 굴러다니고 계속 사라지고 있었다 그 개는 여름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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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비가 온 다음날
비가 온 다음날 조용우 홍콩야자 화분이 사라졌다 여자는 큰길에서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나래옷수선’ 앞에 모아 둔 화분 중 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본다 가게 문을 열고 안팎을 두 번 둘러본다 홍콩야자 화분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는 밤에 누군가 ‘나래옷수선’ 앞을 지나가다 홍콩야자를 보고는 멈춰 서는 모습을 여자는 상상한다 비가 오는 밤에 그는 그것을 가만 바라본다 화분을 한번 들어 보니 무게가 꽤 나간다 그러나 집까지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오는 밤에 그는 몸을 반쯤 굽힌 자세로 화분을 들고 천천히 큰길을 간다 비가 오는 밤에 길을 가다 서 있는다 엉거주춤하다 비가 오는 밤에 그는 홍콩야자 화분을 들고 길을 간다 여자는 이면지를 찾아 파란 마카로 이런 문장을 적어 유리창에 붙인다; 화분 가져가지 마세요. 모두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비가 온 다음날에 저 밝은 화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