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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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연희
연희 조헌용 힐끔힐끔 엿보이는 치마 속 빨간 속옷을 생각하며 김ㄷ연은 침을 꼴깍 삼켰다. 빨간이라면 눈썹을 기꺼이 맡겨도 좋았다. 햇살 좋은 풀밭을 떠올렸다. 혹은 작은 방 침대 위가 좋을까. 예수처럼 펼쳐진 연의 두 팔을 빨간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쭉 빠진 두 다리로 지그시 누를 터였다. 숨 막힐 듯 다가서는 분꽃 내음에 취해 배시시 웃음을 흘릴 때쯤 날아드는 지청구. 나쁜 새끼, 니가 날 두고 딴 년을 만나, 이번에는 또 어떤 년이야, 응, 응? 나쁜 새끼. 넌 내 꺼야, 내 꺼라고. 빨간의 입에서 술처럼 달콤한 욕이 튀어 나왔다. 빨간이 고운 손을 들어 연의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준비해 둔 일회용 면도기로 눈썹을 쓰윽 쓱 밀기 시작했다. 꼭 일회용이래야 해요. 것도 양날로다가. 그게 근방 털이 꽉 차거든. 그럼, 잘 안 밀려요. 그때부터 손에 힘이 들어가 살도 좀 찢어지고, 그래야 부들부들 온몸이 짜르르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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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달을 잃어버린 아이,들1
조헌용 모든 것들이 낯선 풍경이다. 낯설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뜨거운 햇살. 손을 들어 햇살을 막는다. 그러나 생각뿐, 내 손은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영은 어디로 갔을까? 이영은 또 어느 거리를 읊조리며 흐르고 있을 것이다. 티비 CF처럼 경쾌한 녀석은 그러나 사막처럼 스산한 노래를 즐겨 불렀다. 모래바람 같은 녀석의 노래가 갑자기 듣고 싶어진다. 그런 날이다. 또 얼마나 많은 권태와 환멸의 강줄기가 내 몸을 휩쓸고 지나 간 것일까? 햇살은 무겁고, 내 몸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입안이 사각거린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이 사막의 모래를 끌어다주었으면······ 이곳은 어디?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돌린다. 아무래도 낯선 풍경. 기찻길 옆으로 콩밭, 잔바람에 흔들리는 잎들이 잔뜩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무청과 배춧잎이 자라는 밭들 사이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은 초라하고 볼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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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천국에서 온 친구
천국에서 온 친구 조헌용 나비 같은 여자가 머물다 떠난 뒤로 강은 자꾸만 바깥 소식들이 궁금했다. 밤 깊어 낚시꾼 하나 없는 텅빈 자리덕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다. 밤바다에 떠 있는 굵은 전자찌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강의 한숨이 멀어지는 파도를 붙잡았다. 점, 점, 점, 멀어지던 전자찌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잠겼던 찌가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서너 번, 그제야 강은 아무런 기대도 없이 낚싯줄을 감아들였다. 반 뼘도 되지 않는 작은 한치였다. 한치를 잡겠다고 가짜 미끼를 던져 놓고도 올라온 한치가 생경스러웠다. 일주일이 넘게 같은 자리에 앉아 낚시를 하면서 강에게 걸린 것은 파도에 젖은 달빛뿐이었다. 애써 잊어 왔던 수많은 그림자들이 문득문득 달빛으로 떨어져 다시 파도로 멀어졌다. 하현으로 기우는 달 주위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에이, 씨. 한치가 토해 놓은 먹물에 놀라 우종종 두어 걸음 물러났던 강이 한치를 패대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