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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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간결하게, 강렬하게, 시인 이근화
이근화 : 서준환 소설가, 허수경 시인, 조효원 평론가를 만나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다음 세기 그루브」라는 단편을 읽었는데 서준환 씨를 만나면 세상에 없는 음향을 찾으러 함께 길거리를 쏘다니고 싶습니다. 우주로 날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수경 시인과는 저물녘 백반집에 들어가 따뜻한 쌀밥을 먹고 싶습니다. 탁주를 곁들이면 더 좋겠지요. 몇 편의 평론을 읽었는데 조효원 씨의 글쓰기가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젊고 똑똑한 친구인 것 같습니다. * 인터뷰를 끝내고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인터뷰 원고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그녀의 첫 시집을 펼쳐들었다.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 속에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슬픔’이라는 제목의 시가 인쇄되어 있었다. ‘사소’와 ‘개인’, 두 개의 단어가 그녀의 시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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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묵시적 비평을 위한 서언
따라서 비평가는 문학장 내부에서 구성된 지형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시대에 포섭되지 않는 비동시성들에, 더 나아가 그러한 비동시성들을 통해 재구성되는 동시대성에 복무해야 한다. 7)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p. 72. 8) 야콥 타우베스, 『바울의 정치신학』, 조효원 옮김, 그린비, 2012, p. 233. 9) 프랭크 커모드, 조초희 옮김,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 문학과지성사, 1996. p. 31. 10) 같은 책, p. 32. 11) 야콥 타우베스, 『바울의 정치신학』, 조효원 옮김, 그린비, 2012, p. 233. 4. 늦게 온 자의 메시아니즘 비평은 선지자의 언어가 아니다. 비평은 ‘먼저 오는 말’이 아니다. 비평은 언제나 ‘먼저 온 자들’에 비하여 뒤늦게 오는 자들이다. 뒤늦게 오기에 비평은 일견 텍스트 바깥의 특권적 위치를 점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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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피로의 종말론 - 박민규, 「끝까지 이럴래?」
, 한겨레문학상 수상작품집, 2010) - 조효원 - 종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누적된 피로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발가락이 간지러운 느낌에 불과하던 피로가 조금 조금씩 시나브로 몸을 점령해 들어와 종내 눈알을 굴릴 만한 한 방울 힘조차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종말이라 부를 수 있다. 힘이 없어서 눈알조차 굴릴 수 없다면, 그건 정말이지 ‘끝장’ 아닌가? 하므로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투는 결국 피로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삶이 끝으로서의 죽음을 유예하기 위한 활동의 총합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난감한 사실은, 우리는 결코 피로와 싸울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피로는 싸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실상 그것은 모든 싸움의 가능성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피로는 오로지 평화와 번영만을 구가한다. 피로는 삶의 형이상학의 전제군주와도 같다. 이 군주 아래 엎드린 모든 피조물 — 당연히 인간을 포함한 — 은 말 그대로 ‘무기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