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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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체리, 체리
체리, 체리 심장에 하얀 호기심을 품고 있구나. 둥글둥글한 하나의 씨앗으로는 지내기 어려워 살짝 기울어진 심경으로 어쩌면 그렇게 둥그런 모양을 가질 수 있었는지. 너를 심으면 붉은 호기심이 열려 점점 커지다 굴러다니고 싶을 거야. 먼 곳까지 날아가고 싶을지도 몰라 긴 꼬리가 생긴 쪽을 꽁무니로 부르면 되겠구나. 그 꽁무니를 줄로 묶어 둘까. 올망졸망한 호기심, 입안에 끝까지 남아 있구나. 뱉어내고 싶은 호기심. 뱉어내고야 마는 호기심. 냉동실에 얼려 믹서에 갈아 볼까.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생크림 위에 올려 볼까. 그러나 환영은 붉은 과즙. 씨앗은 난처한 포물선을 갖고 있을 뿐.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거겠지. 체리 씨앗들이 컵 안에서 달그락거린다. 저것들을 이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길거리를 다녀 보거나 귀지로 만들어 귀에 넣으면 체리 빛깔의 환청을 들을 수 있을까. 눈알로 삼아 눈 속에 넣으면 사라져 가는 호기심이 다시 생길지 몰라. 체리,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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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체리 향기
체리 향기* 유계영 문어빵 사장님은 가게 한켠에 뇌졸중 걸린 남편을 앉혀 놓고 시도 때도 없이 닦아 준다 익어 가는 반죽을 꼬챙이로 돌려놓은 뒤 그를 닦고 포장 상자에 여덟 개씩 담아 놓은 뒤 그를 닦고 가다랑어포를 뿌려 놓은 뒤 그를······ 보일 때마다 무시로 앞치마로 소맷부리로 흐르는 입가를 추어올리고 머리칼을 양분해 얌전히 귓등에 꽂아 준다 잔돈을 받아 가게를 나올 때 까맣고 동그란 얼굴 위에 깃털들 호리호리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다가 문득 어디론가 이끌려갔는데······ 아버지의 돌 장식장엔 잠들었을 때 더 빛나는 기암괴석들 얼굴을 닮았다는 이유로 주워온 것들인데 험산을 원경으로 본다면 단 하나의 절벽이라서 그때부터다 동그란 것을 보면 닦고 싶었던 게 마찰이 빛을 만든다는 걸 처음 발견한 사람과 사랑이 두려움과 만난다는 걸 이해하게 된 사람이 같은 눈물을 흘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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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언어조련사 루티노
‘애플 스네일’이라 ‘야마토 새우’라 ‘체리 새우’라···*** 그 상실의 부재마저 목적을 잃어버린 목적으로서 청소할 언어 없는 세계로서 살 피 뼈 순으로 허물어지는 횃대의 기관 그 흐느적거리는 몸뚱어리일 수 있다··· 하지 마시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오른 어깨에서 등줄기로 목으로 머리로 90도로 인사하는 축양장닦이 루티노라··· 손에서 팔로 팔에서 손으로 다시 팔에서 손으로 갸우뚱 건너 뛰어다니는 핏빛 날갯짓이라··· ‘나이트 플라이트’라 하지 마시라. 바깥이 없는데 도무지 바깥이 없는데 부딪치고 부딪치는 핏줄새장, 그 경계를 우리는 피가 맨 바깥이든 뼈가 기관이 맨 바깥이든 우리는 그 마지막을 살이라 하지 마시라. 살은 실은 맨 마지막 꿈. 그 몸을 뒤덮은 살의 기관 뼈 피를 실은 살이라 하지 마시라. 꿈이라 끝이라··· 기관도 뼈도 피도 아닌 몸이라 하지 마시라. 기관이 살갗인 몸이라··· 루티노가 우리라··· 핏줄새장이라 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