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훈장 (5) 영감땡감과 딸년
W지구당 부위원장 최백규, W지구 경제인 연합 사무총장 최백규, W지구 로터리클럽 회장 최백규, 감사패 최백규, 공로패 최백규 들이 쏟아진다. 영감땡감 입이 쩍 벌어진다. 처첩들이 쏟아져 나온들 저리 좋을까. 단박에 눈에 생기가 돌고 콧잔등에 힘이 담뿍 담긴다. “어이, 수건 하나 새 걸로 가져오소.“” “수건은 뭐하게요?” “보면 몰라. 닦아야지.” “봤음 됐지 다시 처박아 놓을 걸 뭐 하러 닦고 말고 해요?” “이 사람이? 아, 빨리 안 갖고 와?” 성질을 내든 말든 그건 영감땡감 사정이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다 휑하니 돌아서 나와버렸다. 인부들이 걱정하던 대로 집이 좁아 살림살이가 쟁여지질 않는다. 큰살림들이 쟁여지지 않으니 작은 살림도 집어넣을 데가 한없이 더디다. 인부들 일이 세 겹 네 겹이 되고 이러다가 날밤 새워도 못 끝내겠다고 웅성거린다. 인부들 보기 미안해 무조건 앞 베란다에 쟁여놓으라고 해서야 일은 진척이 보인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4년 AYAF 선정작가 좌담회] 젊은 작가, 그들이 사는 세상
▶ 박찬세 : 최백규 시인은 첫 청탁 받아 봤나요. ▶ 최백규 : 네, 받았습니다. ▶ 박찬세 : 2015년 봄호인가요. ▶ 최백규 : 네. ▶ 신철규 : 아, 아직 안 나왔군요. ▶ 최백규 : 네. 저 등단한 지 아직 3개월밖에 안 되었습니다. (웃음) ▶ 박찬세 : 이번에 AYAF 선정으로《문장웹진》에 시가 올라왔잖아요. 기분이 어땠어요. ▶ 최백규 : 원래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랑, 대구에 계신 시인 선생님 한두 분, 도서관 수업의 아주머니 분들. 이분들이 제 독자였는데 등단하고 나서는 문창과 준비하는 학생들한테 시 읽었어요, 이런 쪽지가 오더라고요. 이제 내 시를 누가 읽어 주는구나, 이것만으로도 지금 감사하고 있어요.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여름 영혼」 외 6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시] 여름 영혼 최백규 열린 창으로 여름 영혼이 실려 온다 야근을 마치고 온 너는 작업복을 벗어 땀을 말리고 있다 저린 팔다리를 주무르며 휴대전화를 열어도 스팸 문자 하나 없다 냉면을 먹으며 종영한 드라마를 보다가 겨자를 씹어 울음이 난다 지난해 여름휴가 캠핑에서는 라면을 끓였지 그때도 스프를 많이 넣었다 글러브를 끼고 공을 주고받은 순간들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게 되었을 때의 환호성 함께 웃어 주던 너는 철거 예정 아파트에서 나를 기다리다 잠들어 있다 사실 여름과 영혼 둘 다 잘 모르겠다고 중얼대다가 눈을 뜨면 초여름이고 대낮이고 무궁화호가 영등포역을 지나 한강을 건너는 중이다 어둡고 넓은 물을 배경으로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 그 아래 너무 외로운 빛들이 눈앞에 번져서 뒤늦게 걸음을 떼는 파도와 우리는 누구보다 많이 닮았다 네 생각을 할 때마다 햇살에 깊이 베여 왔다 몇 개의 여름이 지나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