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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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두 친구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장편)] 두 친구 장은영 1. 사진관에서 만난 사람 “저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너희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히카다 선생님의 말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윤서가 제대로 말했다. 조선인도 천황폐하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천황폐하께 충의를 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국신민서사」를 꼭 외워 오도록 한다. 알겠나?” “네.” 나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아이들에게 난 다르다는 것도 보여 주고 싶었다. 공부를 못하는 조선 아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게 싫었다. 일본 아이보다 더 일본인 같은 모범생이 되고 싶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미자네 집으로 왔다. 「황국신민서사」 외우는 걸 서로 봐주기로 했다. 나는 눈을 감고 「황국신민서사」를 외웠다. 미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틀리는 곳이 없는지 듣고 있었다. “짝짝짝!” 갑작스러운 박수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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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천국에서 온 친구
천국에서 온 친구 조헌용 나비 같은 여자가 머물다 떠난 뒤로 강은 자꾸만 바깥 소식들이 궁금했다. 밤 깊어 낚시꾼 하나 없는 텅빈 자리덕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다. 밤바다에 떠 있는 굵은 전자찌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강의 한숨이 멀어지는 파도를 붙잡았다. 점, 점, 점, 멀어지던 전자찌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잠겼던 찌가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서너 번, 그제야 강은 아무런 기대도 없이 낚싯줄을 감아들였다. 반 뼘도 되지 않는 작은 한치였다. 한치를 잡겠다고 가짜 미끼를 던져 놓고도 올라온 한치가 생경스러웠다. 일주일이 넘게 같은 자리에 앉아 낚시를 하면서 강에게 걸린 것은 파도에 젖은 달빛뿐이었다. 애써 잊어 왔던 수많은 그림자들이 문득문득 달빛으로 떨어져 다시 파도로 멀어졌다. 하현으로 기우는 달 주위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에이, 씨. 한치가 토해 놓은 먹물에 놀라 우종종 두어 걸음 물러났던 강이 한치를 패대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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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내 친구 명훈이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 운운할 때도 나는 그를 떠올리며 그가 내 곁에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나는 나이를 먹은 명훈이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잠들어 있을 때도 웃고 있는 듯이 보였던 그 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어른이 된 그가 요정처럼 짠, 하고 내 앞에 나타나는 광경을 장난스레 몽상할 때도 있었지만, 내 마음에 살아 있는 어린 그의 영상만으로도 그는 내게 이미 요정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가 정말로 내 앞에 나타났다. 외환위기로 파산하여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는데, 내가 사람에 대한 상처와 회의로 울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어른이 된 명훈이가 정말 요정처럼 「세에타악~!」 하고 외치며 나를 찾아왔다. 아직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이른 봄날이었다.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목련이 활짝 피어 있는 어느 조촐한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